“KBS 프로그램 중에서 ‘1박2일’은 ‘무한도전’을, ‘불후의 명곡’은 ‘나는 가수다’를 베낀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같은 HD방송인데 KBS 화면만 누리끼리하게 나오는 이유는 뭔가요?”
경쟁 방송사를 베꼈다는 둥, 화면 질이 왜 이렇냐는 둥, 실무자에게 대놓고 던지는 질문이다. 이 정도 질문이면 싸우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 질문과 대답은 다름 아닌 서울 여의도 KBS 본사 사무실에서 오간다. 질문자는 ‘돌직구’ 화법으로 유명한 방송인 김구라다. KBS가 지난 14일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 전용으로 첫 선을 보인 웹예능프로그램 ‘구라철’이다.
‘구라철’은 김구라가 지하철을 타고 현장을 누비면서 시청자 궁금증을 대신 풀어준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미리 질문을 받아다가 당사자에게 여과 없이 던진다. 너무 여과가 없어서 대화는 선을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그 아슬아슬함이, 동영상 구독자들에겐 자못 통쾌했던 모양이다. “진짜 KBS가 스스로 만든 영상이 맞냐”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는 호평이 쏟아지더니 26일 기준 1회 영상 누적 조회수가 20만회를 넘겼다. KBS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에선 미처 다 보여주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초점을 맞췄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KBS는 지상파 방송사 중 제작 관행이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꼽힌다. 그런 KBS마저 웹콘텐츠 제작에 나섰다는 것은, 이제 온라인 기반 콘텐츠 제작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이런 지상파의 변신은 미디어 소비 행태가 달라진 현실과 관계가 깊다. 지난달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9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13세 이상 6,375명 대상)’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방송매체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무려 63%의 응답자가 ‘스마트폰’을 지목했다. TV는 절반 수준인 32.3%에 머물렀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드라마나 예능을 TV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이용비율(지난해 52%)은 계속 늘고 있다.
여기에다 지상파 자체가 ‘플랫폼 사업자’에서 ‘콘텐츠 제작자’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볼거리가 전파를 타고 TV화면에 제한적으로 제공됐다지만 디지털 시대에선 플랫폼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며 “시청자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찾는 일이 방송가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사실 KBS는 늦은 편이다. JTBC(스튜디오 룰루랄라)는 지난해 7월부터 이미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장성규의 직업체험 예능 ‘워크맨’을 만들었다. tvN도 지난 12월 개그맨 강호동이 라면을 끓여 먹는 예능 ‘라끼남’을 공개했다. 유튜브 ‘케이팝클래식’ 채널을 통해 1990년~2000년대 추억의 인기 가요를 편집, 제공하고 있는 SBS는 그 덕에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지상파가 제작한 웹콘텐츠는 일반 1인 미디어 제작자가 만든 콘텐츠에 비해 훨씬 질이 좋다. 웹콘텐츠는 보통 10여분 안팎의 분량으로 구성돼 있는데, 정규 방송프로그램에 비해 더 빠른 화면전환과 기발한 자막, 그래픽 효과들이 요구된다. 여기에다 평소 지상파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제약에 시달렸던 제작진 입장에서 “수위조절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웹콘텐츠라면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오랜 영상 제작 경험과 노하우, 인력에다 기본 동영상 데이터 자체가 풍부하고, 제약 조건도 엷으니 그야말로 잘 만들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지상파는 어쨌든 공적 역할을 부여받은 상태인데,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영상물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지상파, 특히 KBS의 경우 시청료를 받아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웹콘텐츠를 만들어도 상업성이나 선정성이 과도할 경우 더 엄격한 잣대로 비판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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