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특집은 매 10회마다 한 번씩만 꾸린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고민을 좀 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음식평론가로서 어떻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개강이나 입학이 연기됐고 상당수 직장인이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가정에 구성원이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 테고, 누구보다 요리를 비롯한 살림의 주체가 가장 큰 부담과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다. 가족 구성원이 학교나 직장에서 해결해야 할 끼니를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준비해야만 하니 취사 노동의 부피와 밀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늘 역설해 왔듯 취사 노동에서 조리 부담은 극히 일부이다. 둘러싼 나머지 과업, 즉 식재료 준비 및 관리부터 설거지와 정리 등에 더 인력이 많이 든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사노동과 조리 주체의 신체 및 정신적인 안녕이 위태로워진다. 온라인 창구로 식재료 장 보기를 한정시키는 방안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해 있어 수급이 불안정하거나 최악의 경우 품절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배달 음식도 도움은 되지만 계속 먹는다면 물리거나 영양의 균형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내일 해소될 것 같지는 않은 현 시국에서 식생활에 가능한 한 적은 자원을 들여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려면 어떤 요령을 발휘해야 할까. 이번 글에서는 본의 아니게 궤도에서 벗어난 일상에 적응하기 위한 조리 노동 관리 전략을 몇몇 범주로 나눠 살펴보자.
◇채소
일단 식재료부터 헤아려 보자. 채소라면 저장성이 좋고 다양한 조리법을 적용할 수 있는 종류에 집중하자. 오이나 상추, 깻잎 등의 이파리 채소는 날것 위주로 먹기도 하지만 냉장 보관을 하더라도 신선도가 빨리 떨어진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이런 채소 위주로 식생활을 꾸려 나간다면 장을 더 자주 봐야 할 수밖에 없다. 반면 무나 배추, 당근 같은 채소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으니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 둬도 부담이 적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에 더해 익혀 먹을 수도 있으므로 쓰임새의 폭이 한결 더 넓다. 예를 들어 무나 배추는 국이나 찌개, 당근은 카레에 넣으면 특유의 단맛을 더해 줄 뿐만 아니라 부드러워져 더 많이 먹을 수도 있다.
무나 배추, 당근은 사시사철 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채소이므로 조달의 어려움이 없거나 적다는 게 장점이지만, 동시에 질리도록 먹어야 한다는 단점도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 제철인 봄동 같은 채소도 고려해 보는 게 어떨까. 봄동은 사실 성장을 억제한 겨울 배추이므로 응축된 단맛을 지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겉절이나 쌈이야 기본일 테고, 데치면 부피가 줄고 날것과는 또 다른 맛과 질감을 내니 여러 단을 사다가 한꺼번에 손질해 두고 먹을 수 있다. 일단 넉넉한 냄비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봄동은 뒤집어 뿌리를 중심으로 칼을 꽂아 한 바퀴 돌리면 이파리를 깨끗하게 도려낼 수 있다. 크고 억센 바깥 잎사귀 위주로 골라 샤부샤부의 재료를 익히듯 뜨거운 물에 한 번 가볍게 헹궈 체에 올린다. 너무 잠깐인가 싶지만 그대로 두면 남은 열로 적당히 익는다. 다 데친 뒤에는 도마 위에 널듯 올려 종이 행주로 물기를 적당히 걷어 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소분해 지퍼백에 담아 냉동시키면 무침이나 국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비빔밥과 나물의 식문화에서 풍부한 말린 채소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다만 노동력 절감을 위해 무시래기처럼 껍질을 벗겨야 한다거나 부드러워질 때까지 오래 불리고 삶아야 하는 종류는 피하자.
◇고기
같은 동물의 고기라면 채소와 마찬가지로 활용 가능성이 높은 부위로 고르고, 미리 조리의 앞길을 막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썰어 놓은 것보다 최대한 덩이 위주로 사는 게 좋다. 쇠고기의 경우 국거리를 구워 먹을 수는 없지만, 반대로 구워 먹을 거리로는 국을 끓일 수 있다. 통상 양지머리로 국물을 많이 내는데, 국물의 맛이나 깊이는 우월할지 몰라도 지방이 적고 근섬유 조직이 세로로 너무 길어 구이 등의 다른 조리에는 쓰기가 어렵다. 반면 목심(혹은 윗등심)이나 살치살이라면 마블링을 포함한 지방을 제법 품고 있어 국물을 내도 맛이 있다.
이런 부위를 덩이로 산다면 당장 손질과 소분은 조금 번거롭지만 썰어 파는 것에 비하면 두께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용도 조금이나마 절약할 수 있다. 덩어리 고기라고 해서 손질을 아예 안 해서 파는 것은 아니라서, 대체로 덩어리진 지방을 도려내고 적절히 소분하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스테이크감을 준비한다는 기분으로 1.5㎝ 안팎의 두께로 썰어 냉동 보관하면 해동만 거쳐 바로 구이나 국에 쓸 수 있다. 도려낸 비계는 적당히 깍둑썰기 해서 냉동실에 뒀다가 국을 끓일 때 조금씩 더한다.
돼지고기라면 같은 이치로 수육거리로 나오는 다릿살이 가장 좋다. 삼겹살이나 목살처럼 직화구이로 먹기는 조금 어렵지만 살코기와 비계의 전체 비율은 준수해서 두루 쓸 수 있을뿐더러 가격대도 낮아 부담이 적다. 원래의 용도를 따라 통으로 삶아 수육으로, 또는 간장 양념에 장조림을 만들어도 좋고 2㎝ 안팎으로 깍둑 썰어 고추장 찌개나 카레 등에도 쓸 수 있다. 만약 장조림을 만들었다면 국물의 일부를 남겨 삶은 계란을 담가 두면 손쉽게 맛계란이 되므로 일석이조다.
이처럼 네 발 달린 동물의 고기는 덩이째로 사는 게 좋지만 닭은 정반대다. 통닭보다는 토막 쳐 나온 것을 사야 집에서 뼈와 씨름하며 손질할 필요가 없어 힘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에 쓸 양을 조절하기도 훨씬 쉽다. 게다가 더 자란 닭을 주로 토막 쳐 파는지라 맛이 조금이나마 더 진하다. 무게와 부피가 같은 식재료라면 표면적이 넓을수록 국물이 더 빨리 우러나므로 백숙이나 곰탕을 끓일 때 시간을 아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국물을 낸 뒤 그대로 인스턴트 카레를 더해 조금만 더 끓이면 그대로 몇 끼 두고 먹을 수 있는 주식이 되므로 편하다.
◇탄수화물
쌀이든 밀이든 탄수화물은 기본적으로 저장성이 워낙 좋으므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비축해 놓을 만하다. 쌀이야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밀가루 음식이라면 소면부터 파스타, 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갖춰 두는 게 자칫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집밥의 행렬에 변화를 줄 수 있다. 빵은 전부 냉동 보관해서 먹을 만큼만 토스터에 구우면 되고, 파스타라면 긴 면(스파게티나 링귀니)과 짧은 면(펜네나 푸실리)을 적어도 한 종류씩 갖춰 놓는다. 물론 우리에게는 언제나 라면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음을 잊지 말자.
◇과일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적절한 과일 섭취는 영양의 균형을 맞춰 주므로 웬만하면 챙겨 주는 게 좋다. 당장 싸고 쉽게 살 수 있는 과일로 귤이 있다. 노지 귤은 제철이 지났고 이제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만 남았는데, 무엇보다 누군가 껍질을 벗겨 주지 않으면 과일도 안 먹는 성인이 재택근무를 할 경우 굉장히 유용하다. 실제로 ‘귀찮아서 아내가 까 주지 않으면 껍질 있는 과일은 안 먹어’라고 정말 자랑스레 말하는 남자 성인을 겪어 본 적이 있다. 이런 시기가 아니더라도 자기 과일은 스스로 깎아 먹는 성인(특히 남성)이 되자. 이제 미국에서 제철에 접어들어 등장하는 오렌지도 귤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칼이 없이도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으므로 적극 활용하자. 파인애플(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껍질을 벗겨 파는 걸 사자)이나 후식보다는 간식으로 제 몫을 하는 바나나도 국내산이 아니어서 역설적으로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니 참고하자. 병 혹은 통조림 과일은 나중을 위해 일단은 남겨 두는 게 좋다.
◇식단
자칫 잘못하면 한낱 음식 평론가가 남의 집 밥상 차림까지 간섭하려 든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아 조금 저어하지만 이런 시각에서 생각해 보자. 입이 많아지면 그릇이며 수저도 많이 나오고 당연히 설거지거리도 늘어난다. 만약 설거지마저 요리 주체가 전담한다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이 잘 안 된다. 게다가 밥에 밑반찬 위주의 전형적인 한식 식단을 매 끼니마다 차린다면 정말 한 끼 지어 먹고 치우고 나면 바로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겪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국면에 접어들지 않도록 현재의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경우를 가정해 식단의 구성도 한 번쯤 되짚어 보는 게 좋다.
선호도를 따라 밥 위주의 식단을 고수한다면 반찬과 동원되는 식기의 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일품요리를 적극 고려해 볼 수 있다. 앞에서 카레를 언급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더 적합한 음식이 없다. 고기는 물론 채소까지 적절히 동원해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춰 줄 수 있으며, 인스턴트 카레라면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매일 카레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변화를 꾀한다면 똑같은 뼈대에 재료 한두 가지만 바꿔 살을 붙이기만 해도 다른 음식이 된다. 이를테면 돼지고기 대신 쇠고기(우리는 다용도 쇠고기를 손질해 비축해 뒀다)로, 인스턴트 카레 대신 토마토 통조림이나 파사타(병조림 퓌레)로 바꿔 끓이면 쇠고기 토마토 스튜가 된다. 밥은 물론 파스타에 얹어 먹어도 맛있다. 이렇게 밥 중심 끼니는 일품요리 중심으로, 아침 식사는 빵 위주로 계획하고 군데군데 파스타나 국수 등의 탄수화물 또는 배달 음식을 안배하면 부담을 줄이면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가사 노동 분담
가사와 조리 노동의 주체에게 부담이 많이 갈 상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사 노동의 분담 시도가 이런 맥락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대체로 가족 구성원 사이의 숙련도 격차가 너무 벌어지는 나머지, 노동의 주체는 ‘시키느니 내가 하는 게 속 편하다’라면서 체념하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사라지거나 입이 줄어들진 않으므로, 일정 비율의 조리 관련 노동을 반드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조금씩이라도 위탁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이라면 설거지만이라도 완전히 분리해서 분담시키자. 대부분의 한국 남성이 의무로 거치는 군복무에서 그 정도의 가사 노동은 충분히 익힌다. 다만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대처 능력을 떨어트릴 뿐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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