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이모(30)씨는 얼마 전 동네 마트에서 장을 봐왔다가 공포감에 휩싸였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인데요. 몇 시간 후 그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고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알고 보니 이씨가 마트에 다녀온 때는 확진자가 다녀간 지 하루가 지난 뒤였죠. 바이러스가 실온에서 장시간 생존하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한 후 이씨의 증상은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씨는 여전히 ‘나도 걸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해요.
이른바 ‘상상코로나’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이 확산하면서 나온 신조어인데요. 혹시 내가 감염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예민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심한 경우 두통이나 가슴통증, 어지러움 같은 신체적인 증세로까지 이어지는 것이죠.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마음의 아픔까지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가 늘면서 ‘심리 방역’이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의심하고 경계하고…사소한 정보에 집착하고
요즘 온라인에선 ‘상상코로나’에 시달린다는 호소글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2주째 감기가 안 낫는데 코로나19 아니냐” “갑자기 코가 막히는데 너무 불안하다” “검사 결과 음성인데 검사를 다시 받고 싶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1월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한 달간 전국 각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가격리자와 일반인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 코로나19 관련 심리상담은 1만8,060건에 달합니다. ‘기침이 나는데 코로나19 증상이 아닌지 불안하다’ ‘사람들을 만나기가 무섭다’는 등의 일상적 불안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감염의 공포로 스트레스를 받고 압도 당하면 먼저 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됩니다. 코로나19 관련 정보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예정된 약속과 계획이 틀어져 심한 우울감을 느끼기도 하죠. 장기간 재택 근무에 돌입한 직장인들은 집 안에서 무기력해 집니다. 자가격리자나 환자의 가족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죠.
전문가들은 재난으로 인한 불안은 정신 건강의 이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예방수칙을 지키게 하는 순기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요.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감염을 경계하는 불안과 재난을 이겨낼 것이라는 낙관적 성향을 동시에 잘 가지고 가야 한다”며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안전수칙을 잘 지키면서 희망과 긍정적 기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코로나19 우울증 극복하는 법
평소 마음의 변화를 잘 살피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습관을 가지면 자연히 불안도 줄어든다고 해요. 가벼운 운동과 스트레칭, 자신의 느낌과 생각 정리하기, 음악 듣기, 6~8시간 충분히 수면 취하기 등 간단한 방법만 실천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고요. 물론 너무 괴롭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죠.
정신의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 코비드(COVID)19 심리지원단은 ‘마음백신’ 7가지를 발표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믿을 만한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중시됩니다. 불안감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접하게 되면 되레 정신적 스트레스만 가중되고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게 되니까요.
또 실제 증상이 생긴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지 구체적으로 미리 공부해두라 합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정보를 정확하게 익혀두면 불안을 덜 수 있다고요. 무엇보다 모든 감염병은 주기가 있고 지역사회 감염 단계에 있다가 종식기가 오니 코로나19도 결국 끝난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발표한 ‘마음건강지침’도 참고할 만해요. △혐오의 감정을 줄이고, △나의 감정과 몸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불확실함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가족과 친구와 소통을 지속하고, △가치 있고 긍정적인 활동을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등입니다.
자가격리, 재택근무 등으로 집 안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면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쉬운데요. 일할 때와 쉬는 시간을 잘 구분하고 시간 안배를 하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곽금주 교수는 “쉴 때 쉬고, 놀 때 놀아야 무기력함을 줄일 수 있다”며 “앞으로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어느 곳에서도 정신을 잘 다스리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 조절 능력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어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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