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 둘이 동시에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친구와 연인이, 엄마와 아빠가, 누나와 동생이 동시에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은 사실 없다. 누구를 구한들, 결국 나머지를 ‘버리는’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상드린 콜레트의 장편 ‘파도가 지나간 후’는 이런 상황에 처한 가족 이야기를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작가는 2013년 마흔 넘어 발표한 첫 소설 ‘강철 매듭’으로 프랑스 추리문학대상을 받았다. 주로 한계상황과 인간 존엄성을 다루는 장르소설을 연달아 쓰며 단숨에 프랑스 문학계에서 주목 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파도가 지나간 후’는 콜레트 소설 중 한국에 최고로 번역 소개된 작품이다.
소설은 프랑스 어느 섬마을, 부모와 아홉 명의 자녀가 함께 살고 있던 집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인근 화산이 폭발하며 생긴 파도로 섬은 통째로 수몰됐고, 섬의 가장 높은 언덕에 살던 주인공 가족만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고립된 가족은 초조하게 구조를 기다리지만, 바다는 점차 수위를 높여가며 이들을 옥죄어 온다.
다행히도 12일간 노를 저어가면 인근 육지에 도착할 수 있다. 문제는, 섬을 탈출할 유일한 희망인 배의 정원이 여덟 명이라는 것이다. 가족은 열한 명. 세 명을 섬에 버리고 떠나거나, 아니면 다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가혹한 선택지가 이들 앞에 놓인다.
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ㆍ이세진 옮김
현대문학 발행ㆍ412쪽ㆍ1만5,000원
먼저 아홉 명의 자녀 중 노를 저을 수 있는 나이 많고 건장한 두 아들이 선택된다. 갓난아기를 비롯해 가장 어린 네 명의 여자아이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금방 죽고 말 것이라는 이유로 선택된다. 그렇게 해서 섬에 남겨지게 된 아이들은 루이, 페린, 노에 3명. 아빠인 파타는 “그 세 아이는 특히 영특하니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라고 엄마인 마디를 위로하지만, 마디는 알고 있다. 한쪽 다리가 뒤틀린 채 태어난 루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페린, 왜소증을 앓는 노에. 세 ‘실패작’이 선택됐다는 것을.
섬에 남겨진 세 아이들, 이들을 두고 떠난 나머지 가족의 상황을 대비시키며 소설은 전개된다. 어느 쪽에게든 바다는 동등하게 무자비하다. 남겨진 아이들은 점점 수위를 높여오는 바다, 부모가 자신들을 버린 이유로 인한 고통과 동시에 싸워야 한다. 떠난 가족들 또한 배를 덮치는 폭풍우 등과 싸워야 한다.
어린 딸 로테와 맏아들 마테오, 두 아이를 잃은 채 마침내 육지에 다다랐을 때, 마디는 결국 인정하고 만다. 불가항력의 힘에 자식을 잃은 것보다 스스로 자식을 져버리는 선택이 더 괴롭다는 사실을. 마디는 끝내 이렇게 중얼거린다. “차라리 온 식구가 함께 죽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소설은 이 가족의 상황을 통해 생존 앞에 내몰린 인간이 내리는 선택의 무자비함, 그 무자비함 앞에서도 생을 이어나가는 숭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섬에 남겨진 아이들이 오히려 더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세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섬을 탈출한다.
쓰나미는 아니지만 코로나를 마주한 독자들에게 소설을 그저 책 속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재앙 앞에서 ‘배제’와 ‘혐오’가 아닌 ‘희생’과 ‘연대’를 찾아내려는 인류의 숭고함이 다시 한번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도가 지나간 후’는 코로나로 각자의 집에 고립됐을 우리 독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소설이다. 파도가 잦아든 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다행히도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