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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리가 맞서야 할 ‘열린 사회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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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리가 맞서야 할 ‘열린 사회의 적’

입력
2020.03.2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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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모임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호주 시드니의 대표적 해변인 본다이비치에 21일 많은 시민들이 몰려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국은 결국 이날 본다이비치를 잠정적으로 폐쇄하고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AFP연합뉴스
호주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모임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음에도 호주 시드니의 대표적 해변인 본다이비치에 21일 많은 시민들이 몰려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국은 결국 이날 본다이비치를 잠정적으로 폐쇄하고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AFP연합뉴스

‘바이러스는 그 어떤 장벽도 막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유행할 때면 늘 등장해온 말이다. 누구라도 감염병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으니 정신 차리고 대응하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빠르게 확산하던 2월 말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주로  ‘강 건너 불’ 구경을 했다. 태만의 결과는 끔찍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신종 코로나의 불길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를 태워버렸다.

피해 규모에 있어 중국을 훌쩍 넘어선 이탈리아의 상태가 심각하다. 외신들이 전하는 이탈리아 내 신종 코로나 유행 소식은 차라리 가짜 뉴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들어야 할 정도다. 시신을 놓을 곳조차 없어 벌어지는 실상은 전쟁터와 다름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지역 공동묘지를 폐쇄하는가 하면, 안치소가 부족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시신들이 화장터로 곧바로 옮겨지기도 한다. 군용트럭을 동원해 사망자들을 운송하는 장면에선 이곳이 페스트가 유행한 중세의 재현은 아닌지 눈을 의심할 정도다.

신종 코로나 사망자가 5,000명에 달하며 중국을 추월한 이탈리아, 그리고 각각 확진자 2만여명을 눈앞에 둔 독일과 스페인. 이들 유럽 주요국이 확산 초반 진화에 실패하고 신종 코로나의 최대 위험지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래도록 뿌리 내린 ‘열린 사회’의 문화다.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이 거리를 걸어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호텔에서 외식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중국의 적십자를 이끄는 쑨쒀펑(孫碩鵬) 부회장이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뒤늦게나마 이탈리아 정부가 강도 높은 이동금지령을 내리면서 이 같은 모습이 눈에 띄게 줄고 있지만, 이는 유럽 국가들이 감염병 위기 속에서도 대체로 유지해온 ‘열린 사회(Open Society)’의 단면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리처드 페레즈 페냐는 ‘중국보다 바이러스의 타격을 더 강하게 받은 유럽, 열린 사회의 값을 치르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열린 사회의 전통이 유럽의 신종 코로나 확산세를 부추겼다고 진단했다. 그는 여행과 개인 의사결정의 권리가 오래도록 침해 당하지 않아 왔으며 민주주의의 전통이 깊어 정부가 섣불리 개인사를 통제하지 않는 ‘열린 사회’ 문화 탓에 유럽 정부들이 적기에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집단의 질서가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지 못하는 열린 사회는, 중앙정부가 빼어 든 날 선 ‘닫힌 사회’의 도구들이 효과를 발휘한 중국의 전례 덕분에 바이러스 대유행의 주범으로 지목 받는 분위기다. 

한국 사회도 신종 코로나 대유행 사태를 겪으며 열린 사회를 유지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공공의 선을 위해 자유의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종교단체들과 신자들이 빚어낸 집단감염은 아이들의 배움마저 위태롭게 했을 정도다. 주저하던 정부가 늦게나마 종교시설 등의 운영 중단을 강력히 권고했지만, 이를 지나친 강제로 여기면서 모임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사라지리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전 세계적인 위기를 마주함에 있어 개인과 집단의 자유를 제어하기 위해 반드시 독재나 물리력이 동원될 필요는 없다. 현대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열린 사회의 가치를 신종 코로나 앞에 제물로 바쳐서도 안 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폭풍은 지나가겠지만, 우리는 이후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며 신종 코로나 종식 이후 민주주의에 배치되는 통제사회 시스템이 기고만장해질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급한 불은 끄고 볼 일이다. 결국 포기할 수 없는 열린 사회가 당면한 지금의 적은 질서를 강제하는 당국이 아니다. 어떤 장벽도 막지 못하는 바이러스다.

양홍주 정책사회부장 ㆍ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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