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Why] 4·15 총선 공익 모델인 펭수가 유세마다 등장하는 이유
“펭수가 거기서 왜 나옵니까?”
4ㆍ15 총선을 앞두고 EBS 연습생 ‘펭수’를 무단 도용해 유세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펭수와 펭클럽(펭수 팬클럽)이 단단히 화가 났는데요. 펭수 사진과 유행어를 포스터ㆍ현수막 등 홍보물에 가져다 쓰는가 하면 펭수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들고, 심지어는 아예 펭수 인형 탈을 선거 운동에 동원하는 후보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거 때마다 저작권 침해로 잡음이 끊이지 않아왔는데요. 펭수는 왜 화가 난 걸까요? 또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 펭수가 그 후보를 지지한다고?
부산 남구갑의 한 예비후보는 지난해 12월 선거사무실을 홍보하며 펭수의 얼굴 부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사용해 논란이 됐는데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펭수의 유행어 ‘펭-하(펭수 하이)’를 살짝 바꿔 ‘남-하(남구 하이)’를 쓰고, 펭수와 함께한다는 의미의 ‘위드(with) 펭수’라는 문구까지 넣었죠.
마치 펭수가 해당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원 저작권자와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펭수 캐릭터와 콘텐츠의 저작권은 EBS에 있죠. EBS 측은 “사전 협의 된 적 없다”라고 선을 그었고, 이 예비후보 측은 이후 “홍보 담당자가 잘 몰랐던 것 같다”라며 게시물을 삭제했습니다.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펭수의 인기를 등에 업으려는 후보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죠. 강원 원주갑의 한 후보는 지난 2일 오전 펭수와 꼭 닮은 인형 탈을 유세에 활용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후보 역시 EBS 측에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SNS에서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일자 해당 후보 측은 당일 오후부터 펭수 탈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후보 측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법에 문제가 있는지, 인형탈 대여업체에 저작권 침해가 될지 문의한 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쓴 것”이라며 “확인을 더 했어야 했는데 세심하지 못 했던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대구 수성을의 한 후보는 펭수의 외형과 이름을 교묘하게 바꾼 ‘미스터 펭식이’ 등의 이름표를 단 인형탈들을 이용해 유세에 나서기도 했어요. 후보 측에서는 언론을 통해 “펭수가 바른 말을 곧잘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밝혔죠. 변형을 했어도 펭수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은 분명한 듯 합니다.
펭수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저작권법에 따르면 대중에게 공개된 ‘공표 저작물’을 이처럼 복제 또는 변형하기 위해선 원칙적으로 저작권자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원 저작권자 허가 없이 콘텐츠를 무단 도용하는 것은 위법행위죠. 저작권법에도 교육ㆍ보도ㆍ비평ㆍ연구 등에 대해서는 일정 범위 내에서 인용을 허락하지만 선거와 관련한 언급은 아예 없는데요.
선거 때마다 많은 캐릭터가 펭수처럼 쓰였는데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저작권 관련 전문가들은 “저작권자들이 문제삼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친고죄이기 때문에 선거 유세 중 명예훼손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저작권자들이 나서지 않아 지금까지 잡음 없이 넘어간 것이죠.
하지만 펭수는 참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펭수는 만 18세 선거권 확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함께 콘텐츠를 기획한데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총선 공익광고에도 모델로 참여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중립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상황인데요. 펭수 소속사는 엄정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EBS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펭수와 관련한 모든 저작권ㆍ초상권 침해에 대해 엄정 대응할 것이며 특정 후보 및 정당을 지지하는 선거운동에 펭수가 쓰이는 것은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상시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계속 펭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생기면 법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거송ㆍ패러디는 많이 쓰이던데?
유세에 빠질 수 없는 선거송의 경우는 원작자 동의를 구한 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복제 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협회가 무단 도용을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에 그나마 다른 상황에 비교해 기준이 명확하고 잘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2018년 6ㆍ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한 정당이 동요 ‘상어가족’을 선거송으로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됐어요. 한국에선 애니메이션 ‘핑크퐁’의 아기상어로 유명해진 노래죠. 핑크퐁 캐릭터 사업을 하는 스마트스터디는 “아이들의 동요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선거송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는데요. 정당 측에서는 “영미권의 구전동요”라며 “대행사를 통해 미국 저작권자로부터 무상 사용허가를 받았다”라고 맞서 법적 공방까지 벌이는 상황이 됐죠.
정치 영역에서 대중문화를 소재로 패러디하는 경우엔 보다 판단 기준이 애매해집니다. 상업적 이용이 아니기 때문에 이익을 침해했느냐는 면에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건데요. 앞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의 경우엔 한국코카콜라 측에서 저작권 보단 상표권 측면에서 “경쟁업체도 아니고 제품 활용도 아닌 일종의 패러디여서 문제 삼기 어렵다”고 입장을 밝혀 일단락 되기도 했죠.
이 경우는 어떨까요? 최근 동대문갑의 한 후보는 래퍼 마미손의 인기 곡 ‘소년점프’를 개사해 “위성정당 거대양당 악당들아 기다려라, 이 선거에서 진보정치는 절대 죽지않아”, “위성정당 때문에 기호 7번으로 밀려난 기분을 니들이 알아?” 등의 패러디를 현수막에 담아 눈길을 끌었는데요. 해당 후보는 마미손에게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후보 측에서는 “내부적으로 검토했을 때 이 곡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마미손의 이익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며 “가사를 약간 수정하며 패러디 하는데 법적으로 허가를 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답변했어요.
피해만 주지 않으면 그냥 써도 된다고?
이 후보 측의 답변은 저작권법 제35조의 5항 ‘저작물의 공정이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교육ㆍ보도ㆍ비평ㆍ연구 등 정해진 영역 외에서 쓰일 때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않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죠.
사실 많은 후보들이 이 조항을 염두에 두고 패러디를 하는데요. 법무법인 예율의 허윤 변호사는 “짧은 문장이나 유행어의 경우에는 저작권이 해당되지 않지만 가사는 그 자체에 저작권이 있고 개사로 변용하려면 이 또한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법원에서는 ‘다른 이들은 저작권료를 내고 사용하는 것을 돈을 내지 않고 쓰는 것’도 이익으로 봐 소극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저작권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느냐, 몰랐느냐, 왜 알고도 허락 받지 않았느냐가 문제가 된다”라며 “실제 재판에서는 선거와 관련해 공정이용 조항이 적용되지 않아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법적인 허점을 찾아 허가 받지 않고 저작물을 쓰려 하거나, 저작권자가 문제삼지 않아 안도하기 보다는 사전에 정당히 허락을 받는 게 상식일 텐데요. 앞으로 국민을 대표하려는 분들이라면 법망을 비껴가려는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