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재난이 닥치면, 우리 동물은 어떻게 보호받을 수 있나요?”
1년 전 이맘때인 2019년 4월 4일, 강원 고성군 원암리의 한 전신주에서 시작된 불꽃이 동해안까지 번지며 서울 남산 면적의 약 9.7배인 2832㏊의 산림을 불태웠다. 2명이 목숨을 잃었고, 600여가구의 터전이 사라졌다.
대형 산불은 남겨진 동물들에게도 큰 아픔을 남겼다. 사람들이 대피하며 미처 챙기지 못한 개들은 묶여 있는 목줄 때문에 다가오는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울타리를 넘지 못한 농장 동물들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피해를 입은 동물은 4만여마리가 넘었다.
검게 그을린 반려견들이 불타버린 집을 떠나지도 못하고 가족을 기다리는 사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되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당시 반려견을 두고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대피소로 마련된 초등학교에 차려진 텐트에 반려견을 몰래 숨겨 데리고 와 있기도 했고, 그 마저도 어려웠던 이들은 빈 집을 드나들며 개에게 밥과 물을 챙겼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동물재난대처법을 제대로 만들고 이를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강원도에는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 1년 만에 가장 피해가 컸던 고성군 토성면을 찾은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반가운 소식과 안타까운 소식을 모두 전해왔다. 교회 예배 중 산불을 향해 맹렬히 짖어대 사람들을 지켰던 백순이, 진돌이, 검돌이. 이 중 큰 화상을 입었던 진돌이의 등에는 새 살이 나고, 그 위로 털이 자라났다. 반면 화재 당시 트라우마를 겪었던 진돗개 금비는 신경안정 약물치료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구석에 웅크린 채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1년간 반려동물재난대책을 얼마나 마련했을까. 지금까지는 행정안전부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이 전부인데, 동물 소유자들이 동물을 자발적으로 대피시키고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지인에게 부탁을 하든 알아서 대책을 마련하라는 얘기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발표한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에는 재난에 대비한 반려동물 대피시설 지정, 대피 가이드라인 제작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논의가 이뤄진 것은 없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반려동물도 재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이런 비극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며 “재난 시 동물에 대한 보호와 다치거나 죽은 동물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재난은 예고하고 오지 않는다. 자연재난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재난의 형태도 다양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격리되거나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가족들의 경우 일부는 반려동물을 돌봐줄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반려동물 재난대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재난은 동물들에게도 큰 아픔을 남기지만 동물과 함께한 가족들의 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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