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등 채권단 “자구책 부족” 지원 거절
이후 한국 해운산업 경쟁력 상실로 이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 기간산업들이 줄줄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자칫 2008년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진해운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간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대규모 실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 경쟁력까지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정부의 보다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1977년 설립된 한진해운은 장기간 국내 1위 국적해운사로서 물류 수출입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북미, 유럽, 대서양 등 세계 주요 항로에서 컨테이너ㆍ벌크 운송으로 성장한 한진해운은 한때 선복량(화물량) 기준 세계 7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전 세계 물동량이 급감하자 한진해운은 2013년부터 매년 수천억원 규모의 적자를 내며 존폐의 기로에 섰다.
커지는 유동성 위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한진해운은 결국 2016년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당시 최소 6,500억원 규모의 부채를 해결해야 했던 탓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채권단은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한진해운은 영업을 계속하는 것보다 청산가치가 높다고 판단돼 이듬해 법원으로부터 회생절차 폐지 결정 및 파산선고를 받았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국의 해운 경쟁력은 급격히 위축됐다. 해운 중심지 부산에서는 실업자가 3,000명 이상 발생하는 등 지역 사회의 타격도 컸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한진해운 구조조정을 둘러싼 적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글로벌 해운 위기 당시 각국이 적극 자금을 투입하며 자국의 선사를 살린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 정부는 시장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워 기간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김인현 고려대 교수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최소 8조원 규모 연매출을 날리게 된 것은 물론, 정기선 물류망이 회복불가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와 채권단은 지금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정부는 “한진해운은 선박 임대료 조정에 실패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 성과가 없었고, 대주주도 사재출연을 마다하는 등 정상화 의지가 미흡했다”고 비판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전 회장도 “혈세지원은 불가하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고수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정부는 최대 58조3,000억원 규모의 기업 지원방안을 발표했지만, 지원에 앞서 대기업의 자구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김인현 교수는 “항공, 해운산업은 경제논리로만 접근하기 보다 국가 경제 상황을 감안해 정부가 장기적 관점에서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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