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분 선물투자 만기 때 유가 폭락, 유예 못해 대규모 손실
3,000여명 투자금 날리고 추가 부담… 사상 최악 피해 오명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로 중국은행이 1,000억원대 집단소송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원유 선물투자 상품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은 탓이다. 투자자들은 은행이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며 성토하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가격이 지난 21일 배럴당 -37.63달러로 폭락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중국은행은 이날 5월 인도분 원유 선물투자상품의 만기를 앞두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원유 공급 과잉이 심각해 유가 하락이 예견된 터라 공상은행ㆍ건설은행 등 중국 은행의 라이벌 은행들은 닷새 전 일찌감치 5월분 선물상품의 만기를 6월로 유예(롤오버)하며 위험을 피했다.
하지만 중국은행은 만기 전날에서야 매도 공세로 전환하며 롤오버에 착수했다. 은행 측은 미리 정해진 일정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수요가 급감하고 유동성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중국은행의 선물투자상품은 시장의 냉대를 받았다. 계약 시점과 비교해 만기 때 원유 가격이 올라야 이익을 얻는 롱 포지션(매수 포지션) 상품이었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지면 은행은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21일 WTI 가격이 유례 없는 낙폭을 기록하며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전례 없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하자 중국은행은 하루 동안 선물 거래를 아예 중단했다. 선물시장에서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던 탓에 이에 대한 시스템상 준비도 전혀 돼 있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반대매매로 손해를 줄일 타이밍마저 놓쳤다.
중국은행은 22일 선물상품을 시장가격인 마이너스 유가로 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6월에도 국제시장에서 원유 선물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5억위안(약 870억원)의 충당금을 적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원유 선물거래에 투자한 개인들이 원금을 모두 잃을 뿐만 아니라 중국은행에 추가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 약관상 투자자의 보증금이 선물상품 가치의 20% 이하로 떨어진 경우강제 청산을 통해 돌려줘야 하지만 은행은 제대로 지키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투자자들은 주장했다.
이로 인해 선물상품에 투자한 3,261명은 5,220만달러(약 645억원)를 날렸다. 여기에 중국은행이 판매한 원유 관련 펀드 고객의 투자금까지 합하면 피해액수는 8,500만달러(약 1,050억원)로 추산된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24일 전했다. 중국 매체들은 “해외 선물거래 역사상 최악의 손실”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대형은행들은 수년 전부터 수익이 짭짤한 원유 선물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졸지에 투자금을 송두리째 잃은 피해자들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은행이 선물투자상품의 롤오버 설계를 잘못했고 다른 은행들과 달리 유가 급락에 대비한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아 손실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반면 중국은행은 “국제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규정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했다”고 맞섰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금융기관의 경험 부족과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며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투자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더욱 철저하게 위험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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