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재로 숨쉬기 힘들어… 아직도 가슴이 두근”
군 장병들은 필사의 탈출… 탄약고 사수 사투
“폭격을 맞은 듯 산 능선에서 불이 번쩍하더라고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지난 1일 저녁 고성군 도원리의 한 주택에서 시작돼 맹렬한 기세로 번진 산불을 피해 고성군 천진초등학교로 대피한 도원리 주민 김모(51)씨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뒷산 능선으로 번지는 불의 기세가 쉽게 잡힐 것 같지 않았다”며 “매케한 연기도 참기 힘들 정도였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불이 시작된 도원리와 멀리 않은 학야리, 운봉리 주민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 주민은 “하늘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큰 일이 난 것으로 직감했다”며 “매년 일어나는 산불이 야속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야진 초교 체육관으로 몸을 피한 교암리 주민들은 초조하게 재난 뉴스 등을 지켜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민들은 “강한 바람을 불기둥이 치솟은 것은 물론 연기와 재가 날아와 숨을 쉬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며 악몽 같은 밤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육군 제22사단 장병 1,800여명도 ‘불폭탄’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장병들은 지난 1일 오후 10시 20분쯤 철수 명령이 내려지자 차량과 도보로 주둔지를 빠져 나왔다. 특히 이들 가운데는 신병 800여명도 포함돼 있어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애를 태웠다. 육군 8군단 관계자는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 고려해 병력을 경동대 등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것”이라며 “신속한 작전으로 인명 및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22사단 사령부 내 탄약고였다. 산불이 옮겨 붙을 경우 상상하기 조차 싫은 피해가 우려되는 시설이다. 결국 지휘관과 간부들이 현장에 남기로 했고, 소방대원들과 함께 필사의 사수작전을 벌였다. “밤새 군 소방차 32대, 민간 소방차 10대가 투입돼 밤새 살수작업을 이어간 끝에 탄약고를 사수할 수 있었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한편 당국은 2일 날이 밝자 헬기 38대 등 가용인력을 집중 투입, 오전 8시쯤 주불을 잡았다. 지금까지 축구장 120개에 해당하는 산림 85㏊가 쑥대밭이 됐다. 주택 1채와 보일러실, 축사, 군 부대 초소, 비닐하우스 등 건물 6채가 전소됐다. 당국의 재빠른 조치와 저지선 구축 덕분에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고성군내 6곳에 대피했던 주민 570여명은 불길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대부분 귀가했다.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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