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ㆍ재계 등 “재정 아끼자” 기부 확산… 강원도 등 “경제 살리자” 소비 독려
긴급 재난지원금 기부를 놓고 중앙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과 대기업 등이 국가 재정 절약 차원의 자발적 기부 운동을 사실상 독려하는 가운데, 지자체에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난지원금을 적극 소비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양쪽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어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선의의 재난지원금 사용’을 계획했던 다수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재정 아끼자” 정부는 기부 강조
13일 정부와 재계 등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기부 선언으로 불기 시작한 재난지원금 기부 바람은 관가와 재계, 금융권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전날 홍남기 부총리의 기부동참 선언에 이어, 이날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간부들이 지원금 기부 의사를 밝혔다.
대기업도 속속 기부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신한, 우리, BNK 등 금융그룹 경영진이 이날 잇따라 재난지원금 기부 의사를 밝혔고, 삼성 SK LG 롯데 등 주요 대기업 임원들 사이에서도 자발적인 기부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민간의 기부 바람은 당정의 암묵적인 기부 권유에서 출발했다. 당초 정부의 소득 하위 70% 지급 방침이 총선을 거치며 전국민으로 확대되자,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를 감안해 여당이 “고소득층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면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정부를 설득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부된 기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직격탄을 맞은 고용 취약계층 지원에 쓰인다”며 “기부금이 많이 모일수록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추가 재정 투입을 줄일 수 있어 정부로서는 자발적 기부 운동이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 등 지자체는 소비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오히려 재난지원금 소비를 독려하고 있다. 강원도는 이날 재난지원금 기부 대신 적극적인 소비를 권장하고 나섰다. 청와대를 시작으로 대기업,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일부 자치단체까지 기부 서약이 확산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고소득자를 포함한 모든 도민들이 재난지원금을 받아 이른 시일 내에 지역 내에서 소비해, 코로나19로 침체된 내수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많은 지역 특성을 감안한 처방이기도 하다. 최문순 강원지사는 “경제방역이나 마찬가지인 이 돈을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은평구도 착한 소비를 선택했다. 공무원들부터 재난지원금을 지역에서 사용하는 ‘아름다운 소비 운동’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기부와 소비를 놓고 지자체 간에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도 있다. 서초구와 서대문구 등은 5급 이상 직원들이 전액 기부를 결정했다. 이철우 경북지사와 이용섭 광주시장과 자치단체 간부공무원들 역시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는 방법으로 기부에 동참했다.
전남도는 기부와 착한 소비 캠페인을 동시에 진행한다, 김영록 지사를 비롯한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재난지원금을 자율적으로 기부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지역 내 상점가에서 소비 활성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난감한 국민들
이처럼 재난지원금 기부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제각각 입장을 보이면서, 중간에 낀 국민들은 난감해 하고 있다. 당초 기부를 계획했던 회사원 김모씨는 “재난지원금을 쓰는 게 지역 소상공인을 더 도울 방법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무조건 기부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가족과 상의해 보고 다시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부와 소비 모두 경제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며 어느 쪽이 맞다는 식의 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중앙정부나, 지역상권 활성화를 고민하는 강원도나 모두 이해가 간다”며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한만큼 기부와 소비는 전적으로 국민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춘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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