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중국 지도부에 단순한 공중보건 위기가 아니었다. 공산당에 대한 중국 인민의 신뢰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충격파나 다름 없었다. 시진핑(習近平) 정부 입장에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한 강한 중국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안보전문가들은 올해 11월 열리는 ‘제13회 주하이 국제 에어쇼’를 그 선전 무대로 보고 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이 4년 전 개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전략폭격기 ‘시안(西安) 훙(轟ㆍH)-20’이 첫 선을 보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시안 H-20은 중국에 차세대 무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은 초음속 장거리 스텔스 전략폭격기 ‘시안 H-20’을 올해 에어쇼에 내놓을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국제행사인 에어쇼 개최를 통해 코로나19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데다 신무기 공개로 중국 방위산업의 우수성까지 덤으로 뽐 낼 기회로 여긴 것이다. 광둥성 주하이에서 1996년부터 격년으로 열리는 주하이 에어쇼(중국국제항공우주박람회)는 43개국 770여개업체(2018년 기준)가 참여하는 글로벌 항공 박람회다.
◇자체 기술로 더 강한 폭격기 만든다
H-20의 이름은 2016년 마샤오텐(馬曉天) 중국인민해방공군(PLAAF) 사령관이 신세대 장거리 폭격기 개발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비행거리가 최소 8,500㎞를 넘고, 최대 이륙 및 적재 중량이 각각 200톤, 45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초음속 스텔스 크루즈미사일 4대도 장착될 예정이다. 공개된 시제품 사진을 보면 미국 B-2 폭격기와 유사한 날개 모양(전익기)이다.
중국이 현재 보유한 대형 폭격기 ‘H-6k’의 한계가 H-20 개발로 이어졌다. H-6k는 1954년 구 소련이 도입한 Tu-16을 면허생산한 H-6의 개량 모델이다. 현대 기술을 적용해도 원본 자체가 워낙 구형이고 비행거리도 6,000㎞에 불과하다. 장거리 전력 보강을 원하는 중국 지도부의 구상에 부합하지 않았던 만큼, 자체 전략폭격기를 제작하겠다는 목표 아래 대대적인 투자가 뒤따랐다. H-20은 최근 연이어 실전 배치한 스텔스 전투기 ‘젠(殲·J)-20’ 대형수송기 ‘윈(運·Y)-20’ 중형 수송 헬기 ‘즈(直·Z)-20’ 등에 이은 20 시리즈의 새로운 버전이기도 하다.
H-20은 전략적 공군을 지향하는 중국의 의도에 딱 맞아 떨어지는 항공 무기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5월 의회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이 초기 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급유기도 개발하고 있어 H-20의 능력은 제2열도선을 넘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열도선은 중국의 대미 군사방어선이자 미국의 대중 군사봉쇄선이다. 제1열도선은 일본 오키나와와 대만 필리핀을, 제2열도선은 일본 동부 해상과 괌, 남태평양 섬들을 잇는다. 제2열도선 이상의 공격력을 예상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미국에 훨씬 더 위협적이라는 뜻이다.
◇3각 핵무기 마지막 퍼즐
신형 전략폭격기를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국방력을 과시하는 효과는 크다. 현재 전 세계를 사정 거리에 둔 거대 폭격기를 운용하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 정도다. “H-20이 공격과 방위 양면에서 공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중국 군기관지 해방군보 온라인판)”고 중국은 자체 판단하고 있다.
‘핵무기 3각축(nuclear triad)’ 체제의 완성이란 측면에서도 H-20의 등장은 중요하다. 핵무기 3축은 육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중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공중 전략폭격기 등으로 이뤄진 핵무기 운반 체계를 일컫는다. 통상 핵 보유국은 이런 3각축을 통해 전략적 억지력의 수준을 가늠하는데, 그간 중국은 공중 전략 수단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기존 H-6도 소량의 핵무기는 탑재할 수 있으나 실전 배치용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레이더에도 쉽게 탐지되고, 전투 반경 역시 1,800㎞로 작은 편에 속한다. 중국은 현재 DF-4/5 대륙간 핵탄도미사일을 중국 로켓사령부 예하의 내륙기지에, JL-2 잠수함 발사 핵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Type 094형 진(晉)급 전략핵잠수함을 남해와 북해 함대 사령부에 각각 배치하고 있다.
H-20은 큰 틀의 국방 전략에서 역시 효과를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군은 남중국해 전초기지에 비행장 및 격납고를 건설하면서 작전 지역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데, H-20가 합류하면 위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 국방부는 “앞으로 남중국해 기지에 배치되는 중국 전투기는 사정 거리가 늘어나 인도양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인 동아프리카 지부티 해군기지까지 더해지면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은 아시아를 넘어서게 된다. 아프리카 아덴만과 홍해 사이 전략 요충지에 위치한 지부티 기지에는 현재 중국 최대 군함인 항모 랴오닝함도 정박할 수 있는 매머드급 부두 시설이 거의 완공 단계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2 맞상대로는 역부족 의구심
물론 H-20 개발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엔진 성능이 가장 큰 문제다. 한 소식통은 SCMP에 “중국 최초의 능동형 스텔스 전투기인 J-20처럼 H-20 폭격기의 엔진 개발도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 완료 뒤 기동성과 레이더 탐지를 방어하는 스텔스 성능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H-20에는 중국산 WS-10B 엔진 탑재가 유력한데 위력은 ‘과도기’ 수준으로 평가 받고 있다. 단적으로 H-20의 라이벌 격인 미국 B-2에 맞서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한 중국군 소식통은 “H-20는 속도와 전투 능력 모두 설계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H-20의 데뷔는 또 다른 역내 갈등을 촉발할 위험성이 크다. 당장 H-20 영향권 안에 들어오는 한반도와 미국, 일본은 군사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책임론을 둘러싸고 대립 수위가 한층 높아진 미중관계에 득이 될 리가 없다. 해묵은 분쟁지역인 대만해협, 남ㆍ동중국해 당사국들에도 H-20의 등장은 달갑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연내 H-20을 공개할 경우 이르면 2025년 실전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배치 시점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가령 미국이 중국 봉쇄를 위해 최대 500대의 F-35 전투기를 한국, 일본, 싱가포르, 인도, 대만 등 이른바 인도ㆍ태평양지역에 대거 배치하면 중국도 H-20 실전 투입을 서두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