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연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전날에 이어 21일 “한 전 총리는 검찰의 강압 수사와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며 재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사건의 핵심 증인인 고(故) 한만호씨가 “검찰의 회유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쓴 비망록이 최근 언론에 공개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당시 검찰 수사팀은 “해당 비망록은 증거로 채택돼 법원이 허위로 판단한 내용”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민주당과 검찰이 과거 사건을 놓고 맞서는 모양새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한신건영 대표 한씨로부터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기소됐다. 1심에선 한씨가 돈을 줬다고 한 검찰 진술을 번복해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과 대법원은 한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재조사 불가 이유도 이런 판결을 근거로 한다. 비망록은 이미 재판 증거로 사용됐고, 자금 추적 등 다른 증거들이 유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는 주장이다.
반론도 제기된다. 공책 29권, 1,200쪽 분량의 한씨 비망록에는 사업 재기와 조기 출소 제안 등 검사의 회유 협박과 수십 차례에 걸친 진술 연습 과정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검찰 주장대로 그 방대한 내용을 허위로 꾸몄다고는 믿기 어렵다. 검찰이 비망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지만 유리한 부분만 발췌해 활용했고, 비망록은 당시 언론에 공개되지도 않았다. 2심 재판부가 한씨를 법정에 불러 진술 번복 이유를 확인하지 않은 것도 정상적 절차는 아니다. 당시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 사법농단 관련 문건에 한명숙 사건을 상고법원 도입과 연관 지은 대목이 있는 점도 의구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일부 의혹이 있다 해서 비망록만으로 종결된 사건을 재조사로 몰아가는 것은 과도하다. 자칫 사법 불신을 키우고 사법 체계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자신들이 수사해 결론이 난 사건을 재조사할 리도 없다. 민주당이 사건을 바로잡고 싶다면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심 사유로 명시된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수집해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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