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63>익산 함라면 함라한옥마을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디, 기초는 무주허고 서해는 영광이라.’ 호남의 여러 지명을 넣어 노래한 단가 ‘호남가’의 한 대목이다. 작자와 창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광주 출신의 명창 임방울이 특히 잘 불렀다고 한다. 노랫말에 등장하는 화순 무주 영광은 알겠는데 함열은 어디일까. 전북 익산시에 함열읍이 있다. 하지만 호남가에서 지칭한 함열은 이웃한 함라면이다. 함라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까지 함열현ㆍ함열군으로 명맥을 이어 온 지역의 중심이었지만, 철도 역이 지금의 함열읍에 들어서면서 함라면으로 위세가 줄었다. 면 소재지는 그래도 ‘함열리’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자존심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만석꾼 세 부잣집 담장만 1km 넘어
함라면의 첫 인상은 낡고 빛 바랜 시골 마을 모습이다. 면 사무소 인근의 문닫은 한약방 간판은 명칭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워졌고, 슈퍼마켓의 담배 판매 간판은 형체만 겨우 알아볼 정도다. 파출소 옆 2층 슬래브 건물 입구에 걸린 현판에는 ‘함라 농민연합회, 자율방범대, 전우회, 번영회, 체육회’라는 글씨가 세로로 한꺼번에 쓰여 있다. 조직 명칭이야 원래 세련됨과 거리가 멀지만, 당시로선 나름대로 멋을 부렸을 글자체가 오래된 유산처럼 고전적이다.
그럼에도 함라마을을 대표하는 색깔은 단연 황토색이다. 도로변의 낡은 풍경에서 마을 안으로 한 발짝만 들이면 황토 담장길이 이어진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황토색은 인위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땅과 토지의 색이다. 원색에 비해 생동감이나 역동성은 떨어지지만, 오래도록 봐도 싫증나지 않고 편안하다. 함라마을이 고풍스러운 자연미를 풍기는 건 그래서다.
붉은 진흙에 다양한 색과 모양의 돌을 품은 황토 담장은 파출소부터 이어진다. 현대식 건물에 황토 담장이 이질적으로 보일 만도 하지만, 관공서가 지닌 권위적 느낌을 한결 누그러뜨린다.
파출소 뒤부터 함라마을을 대표하는 삼부자 집(조해영ㆍ이배원ㆍ김병순 가옥)이 이어진다. 이른바 함라의 만석꾼 집안이다. 함라는 예부터 들이 넉넉해 부자가 많은 고을이었다. 세 만석꾼 외에 천석꾼이 또 10여호나 있었다. 자연히 지역에서 영향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1912년 호남선 함열역이 함라마을에 들어서지 못하고 약 5km 떨어진 외곽에 지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후부터 지역의 행정과 경제 중심도 함열로 옮겨졌다.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크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함라의 옛 모습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기본 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기보다 더 멀리 내다본 고집 센 양반들의 혜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흔히 아흔아홉 칸으로 묘사되는 세 부잣집의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일부 가옥이 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외에 드넓은 마당과 정원으로 구성된다. 저택을 두른 담장 길이가 각 집마다 300~400m에 이르러 바깥으로 한 바퀴 돌면 5분은 족히 걸린다. 이들 부잣집과 이웃해 다소 규모가 작은 집들이 또 다른 담장으로 골목을 이룬다. 마을 나들이 자체가 황토 담장 산책이다.
후손이 살고 있는 조해영 가옥은 내부를 개방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들어가 볼 수 있다. 집안에 건물을 경계 짓는 문이 12개나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다섯 채만 남아 있다. 1918부터 지은 건물이어서 한옥에 일본식 요소가 가미돼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십장생을 표현한 꽃담장과 농장 사무실로 이용했다는 별채가 이 집의 자랑이다.
이배원 가옥의 일부는 현재 원불교 함라교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내부 담장을 사이에 둔 옆집은 솟을대문을 그대로 두고 슬래브 주택으로 개량해 조금은 아쉽다. 후원으로 나가면 황토 담장을 두른 넓은 정원과 텃밭이 펼쳐진다. 이 집 담장은 수수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황토 담장의 전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세 집 중 유일하게 국가민속문화재에 이름을 올린 김병순 고택은 아쉽게도 내부를 개방하지 않는다. 담장과 연결된 기다란 행랑채만 봐도 범상치 않은 규모로, 전북에서 가장 큰 저택으로 꼽힌다. 담장은 주춧돌과 디딤돌을 정교하게 다듬고, 희고 매끄러운 화강암으로 단장해 부잣집의 풍모를 한껏 풍긴다. 황토색 위주의 다른 담장과 구분돼 조금은 이질적이다.
◇전통마을의 저력은 협동과 경쟁
함라마을의 전통은 겉모습으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다. 원불교 함라교당의 이이원 교무는 ‘함라 노소(老所)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제 기능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노소는 오늘날 노인들의 쉼터 정도로 취급되는 경로당이 아니라, 마을의 대소사를 결정하고 규율을 관장하는 등 지역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마을 회의체다.
성씨 다른 세 가문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 것도 함라마을만의 특징이다. 당시 서울과 호남에서 제일가는 목수를 경쟁적으로 초청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유명 건축가를 다투어 초빙해 특색 있는 건물을 짓고 ‘카사 ○○○’라고 명명한 스페인 부자들과 닮았다. 손님이 오면 서로 어떤 음식으로 대접할까를 놓고 고민했다는 것도 ‘인심은 함열(함라)’의 근거로 해석된다.
그러나 함라마을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등에 비하면 관광객을 맞을 준비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마을에 그 흔한 찻집이나 카페 하나 없다. ‘함라파전’과 ‘함라김치’는 마을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음식이지만 이를 판매하는 식당은 없다. 함라파전은 쪽파가 아니라 대파가 주 재료다. 대파의 단맛이 올라오는 겨울철 짧은 시기에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함라김치는 배추가 아닌 미나리가 주 원료다. 겉절이와는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한다.
가장 거슬리는 건 전통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전봇대다. 면 사무소 옥상에 오르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이배원 가옥 앞의 전봇대와 전선부터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버려 놓는다.
함라마을은 파출소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돌아보기 좋은 규모다. 흙담, 돌담, 화강암 담장까지 다양하고, 직선과 곡선으로 휘어진 골목마다 느낌이 달라 취향대로 인증 사진을 찍어도 좋다. 마을 뒤편 함라산 주변으로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능선에 오르는 가장 짧은 등산로는 웅포면 익산산림문화체험관에서 연결된다. 약 500m 가파른 산길을 올라 봉수대가 있었던 자리에 오르면 동편으로 익산의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맞은편으로 금강 물길이 유유히 흐른다.
익산=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