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댕기머리 소녀가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주자 손안에 머물던 한 마리 새가 힘차게 날아 오른다. 서울 은평구 역촌오거리에 있는 소녀상의 모습이다. 주먹을 쥐고 의자에 앉은, 익숙한 소녀상과 달리 이 소녀상은 두 발로 선 채 평화의 상징을 힘차게 날려 보내고 있다.
금천구청 앞 소녀상은 더 구체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한 손에 번데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나비를 날려보내는 소녀, 한 발을 내디뎌 몸을 앞쪽으로 기울인 자세에선 적극성도 엿보인다. “번데기는 나비가 되기 이전의 상처받은 과거를, 나비는 미래를 의미한다. 소녀가 나비와 함께 과거의 상처를 날려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의미를 담았다.” 소녀상을 제작한 배철호 작가의 설명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대표적인 소녀상은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주먹을 꽉 쥐고 의자에 앉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소녀상이 건립돼 있다. 정의기억연대의 ‘평화비 국내 건립 현황’ 자료에 따르면 3월 28일 기준 국내 소녀상은 총 131개, 이 중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동일한 형태가 67개에 달한다. 나머지 소녀상은 얼굴도, 몸짓도, 손짓도 각기 다르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기부금 유용 의혹이 소녀상 저작권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지만,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기억하고 일본군의 반인륜적 범죄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자는 건립 취지만은 그 어떤 소녀상도 다를 수 없다. 거리와 광장에서 또는 교정에서 인권 유린의 아픔을 기리고 있는 소녀상을 찾아가 보았다.
경기 부천 안중근공원에 있는 소녀상은 남다른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뒷모습은 머리를 길게 땋은 소녀의 형상이지만 앞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거울과 마주하게 된다. 소녀의 얼굴 대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돌아보자는 취지다.
소녀상이라고 해서 소녀의 모습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1년 일제의 만행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기림 조각상은 실제 할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조각상에 적용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과 경기 고양 국립여성사전시관에 세워져 있는데, 주먹을 움켜쥔 할머니의 모습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1992년 용기 있게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일본의 사죄를 촉구한 김복동 할머니상’ 역시 지난해 8월 할머니의 생김새 그대로 경기 이천시에 설치됐다.
우여곡절 끝에 건립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2016년 12월 부산 주한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은 관할 구청이 불법 시설물이라는 이유로 강제 철거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이틀 만에 설치를 허용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 건립될 예정이던 소녀상의 경우 학교와 학생회 측의 절차상 문제로 갈등이 불거지고 일본인 관광객 감소를 우려한 일부 상인들의 반대에 부닥치면서 결국 다른 장소에 설치됐다.
2013년 9월 서울 서초고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유사한 형태로 제작해 교내에 설치하려다 저작권 침해 시비로 아예 다른 형태의 소녀상을 제작했다. 최근 강원 태백에서도 제막식을 앞둔 소녀상이 저작권 침해 논란에 휩싸여 공개가 중단된 상황이다.
2일 역촌오거리 소녀상 앞에서 만난 김지영씨(36)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떠나 소녀상이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상징이 되는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수치스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여러 소녀상을 통해 계속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이동진 문소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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