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징계 보장’ 담은 915조 폐지 또는 개정 추진
훈육을 명분으로 보호자들이 아동을 학대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법무부가 민법상 보장된 ‘보호자의 아동 징계권’을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아동복지법이나 아동학대처벌법에 규정된 '신체ㆍ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행위 금지'를 민법에도 명확하게 규정하겠다는 취지다.
법무부는 10일 민법 915조의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손 보는 한편 ‘보호자의 체벌금지’를 법제화하는 민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징계에는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방식은 포함되지 않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소지가 있다.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어, 어떠한 경우에도 체벌이나 학대를 허용하지 않는 현재의 사회통념과 맞지 않은 조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더욱이 최근 훈육을 이유로 보호자가 학대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9살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 안에 가둬놓고 숨지게 한 충남 천안시 계모 사건, 9살 여자아이가 상습학대를 참지 못하고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온 경남 창녕군 사건의 가해자들은 한결같이 “훈육차원에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915조 자체를 삭제할지, 아니면 문구를 수정할지는 아직 확정하지 않은 채 전문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아동권리보호단체에서는 징계권을 삭제해 훈육의 개념에서 체벌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징계라는 단어가 자녀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고 신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해석의 여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내 새끼 때려서라도 잘 돼야 한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며 “징계권을 삭제하면 체벌을 동반한 훈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도 “모든 훈육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민법 915조를 삭제하되, 913조의 ‘자녀를 교양할 권리의무’를 구체화해 체벌을 배제한 긍정적 훈육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법무부 내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도 올해 4월 민법 915조를 삭제하고 아동에 대한 부모의 체벌이 금지됨을 민법에 명확하게 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법무부는 12일 관계 기관과의 간담회를 통해 아동인권 전문가 및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한 후,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구체적인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최대한 신속하게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