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 본심 통합 시 부문 심사평
심사위원의 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않은 작품은 다음 3편과 같다. 노혜진씨의 ‘엄마는 저렇게 걸어오지 않는다’, 김겨울씨의 ‘형벌’, 정유소씨의 ‘외나무다리’. 정유소씨의 작품은 일상의 균열을 끝내 잡아내는 관찰의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시 전반에서 보이는 단단한 진술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지점에서는 예상된 시의 흐름을 살짝 비틀어보는 엉뚱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김겨울씨의 작품은 상상의 영역에서 독특한 영토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에 비해 지나치게 평면적인 제목은 시를 보는 이의 자세조차 느슨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제목도 시에 포함된다. 아주 유력한 방식으로.
당선의 영예는 노혜진씨에게 돌아갔다. 신춘문예 발표 시즌마다 들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노혜진의 작품은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요즘 시가 시답지 않게 길다, 최근 시는 언어를 정제하지 못한다, 산문시의 경향이 한국시를 망친다 등등.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인가? 노혜진의 시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답하는 듯하다. 가령 “여성이 되기 위해 꽃을 사들이고 무늬를 사들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아합니다”라는 다소 소설적인 문장은 시에 대한 평균적인 인식에 비해 길게 나열된 ‘엄마’의 특정되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그 의미가 넓어진다. 그렇게 우아해진 부분 외 나머지 것들을 더 궁금하게 한다. 나는 이런 전개를 시적이라 부르지 않을 자신이 없다. 경쾌한 발성, 산문 형식을 지탱하는 관점의 전환과 독특한 리듬감, 페이지 전반을 아우르는 페이소스… 이 모두가 충분히 이미 시라고 부를 만했다. 요즈음 시가 아니고, 진짜 시.
이번 심사는 예심과 본심이 함께 진행되었다. 시인에게는 전부라 할 수 있는 자신의 취향을 근거로, 다른 이의 취향을 설득하는 작업을 더욱 치밀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시와 시, 시인과 시인이 서로에게 육박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을 통하여 새로이 등장한 노혜진 시인의 손을 잡고, ‘시라는 것’을 두고 벌이는 유구한 전쟁의 복판을 함께 걸어가도 되겠다 싶다. 앞으로 그가 이룰 겸허한 돌파를 응원한다.
황인숙ㆍ김민정ㆍ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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