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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우주의 기운' 비판 래퍼 "아직 별일 없어요"

입력
2016.11.0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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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디템포. 디템포 제공
래퍼 디템포. 디템포 제공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 내용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건 민주주의일 때 얘기고.” 래퍼는 딴지로 노래를 시작합니다. 그에게 ‘최순실 게이트’로 어수선한 시국은 “성스러운 우주의 기운이 깃든 샤먼, 과거로의 회귀”입니다. “걱정은 많이 했지만 예상치 못했구나 청동기 시대일지”라며 자조적으로 랩을 잇지요.

래퍼 디템포(남석종·26)는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여겨지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우주의 기운’을 최근 냈습니다. 풍자가 매섭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아바타”라고 표현했습니다. “독일로부터의 신탁 기다리는 안드로이드 봇” 등 ‘최순실 게이트’ 관련 사건 흐름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풍자의 날을 세웠죠. 래퍼 김디지를 비롯해 오왼 오바도즈, 제리케이 등 여러 래퍼들이 랩으로 ‘시국선언’을 하는 곡을 냈는데, 풍자의 구체성 면에서 디템포의 ‘우주의 기운’이 가장 눈에 띄더군요. 곡을 만든 이유가 궁금해 지난 1일 연락을 해보니 “뉴스를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애초 다른 곡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최순실 게이트’로 시국이 어수선해 이틀 동안 매달려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래퍼 디템포의 '우주의 기운' 뮤직비디오 한 장면.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했다. 뮤직비디오 캡처
래퍼 디템포의 '우주의 기운' 뮤직비디오 한 장면.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했다. 뮤직비디오 캡처

디템포의 랩 ‘시국선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내가 역사를 쓴다면’(2015)에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했고, ‘새타령’(2015)에선 서민 증세 등을 꼬집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곡을 계속 내왔던 거지요. ‘앞발 들어’(2016)에선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개, 돼지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하지요. 그래서 디템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엔 ‘살아 있어요?’ 라거나 ‘괜찮아요?’ 등의 안부를 묻는 네티즌의 댓글이 수두룩합니다. 강도 높게 현 정부에 대한 날을 벼려 혹 보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겁니다.

디템포는 ‘새타령’이란 곡을 냈을 때 뮤직비디오를 한 인터넷 사이트의 공식 계정에 올리지 못하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답니다. 풍자 내용에 대한 네티즌 항의가 많아 자신의 개인 채널에만 따로 올려야 했다는 게 디템포의 말이었습니다. 또 다른 피해 사례를 묻자 “만약 큰 일이 있었다면 계속 음악을 내지 못했겠죠”라며 웃더군요. 하도 주위에서 생사를 챙기다 보니 그는 오히려 장난기가 발동했던 모양입니다. 디템포는 ‘우주의 기운’ 뮤직비디오를 SNS에 올린 뒤 댓글에 ‘게임을 시작하지’란 글과 함께 현관문을 잠그는 모습의 사진을 올립니다. 인터뷰를 위해 SNS로 접촉하니 ‘당신은 용감무쌍하게도 디템포에게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란 답문이 오더군요. 스스로를 ‘불온한 래퍼’ 혹은 ‘위험한 래퍼’로 설정한 뒤 네티즌과 풍자가 깃든 놀이를 주고 받고 있는 겁니다.

디템포가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한 풍자곡만 쓴 건 아닙니다. 2014년에 낸 ‘치킨’이란 노래에선 직장인의 암울한 미래를 ‘기-승-전-치킨’으로 표현해 웃음을 줬습니다. 고졸이든 대졸이든 상관 없이, 문·이과 1등부터 꼴등까지 미래를 걱정하며 나중엔 ‘치킨 집이나 차릴까?’라고 입을 모으는 세태의 풍자인 겁니다. 디템포는 실제 친구들과 맥주를 먹으며 치킨집 얘기를 하는 자신을 보고 노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요즘 힙합신엔 허세란 뜻으로 쓰이는 ‘스왜그’(Swag)문화를 토대로 ‘나 잘 났다’는 노래가 홍수를 이룹니다. 기죽은 ‘88만원 세대’에게 자신감 넘치는 래퍼들의 모습과 노래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현실과 동 떨어진 얘기들이라 괴리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무명이지만 디템포가 일부 네티즌 사이 사회적으로 공감 가는 가사로 주목 받는 이유입니다. 그에게 가사 쓰는 기준을 물었더니 “듣는 사람들이 유쾌할 수 있도록 해학적으로 풀려 노력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는 ‘새타령’를 실제 타령처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디템포(Detempo)라는 활동 명은 여러 소리를 변형해 풍부한 소리를 만드는 ‘디튠’(Detune)이란 음악적 용어에서 따 왔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템포(Tempo)의 곡을 소화하는 래퍼가 되고 싶어서 만든 이름이라더군요. “매일 뉴스를 보고 있다”며 관심이 가는 사안이 생기면 또 돌발적으로 곡을 만들 거라고 합니다. 그가 움츠러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 ‘우주의 기운’ 가사가 너무 센 거 아니냐고요? 주위에서 오히려 ‘너무 약한 거 아니냐?’고 하던데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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