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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무슨 일 있었나

입력
2017.04.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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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현대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모 강사가 3ㆍ1운동에 관한 강의 중에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서 있었던 일을 다소 희화적으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과연 그날 태화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19년 1월 말 천도교의 손병희와 최린, 권동진, 오세창 등은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2월 들어 기독교 측의 이승훈, 함태영 등과 연합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양측은 2월 24일 연합에 최종 합의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불교 측, 학생 측과도 연합이 이루어졌다. 민족대표로 서명할 사람은 천도교 측 15인, 기독교 측 16인, 불교 측 2인 등 33인으로 결정되었다.

2월 28일 밤 서명자 23명은 가회동 손병희의 집에 모여 인사를 교환하였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기독교 측의 이갑성이 다음 날 오후 2시 선언식이 예정되어 있는 탑골공원에 학생들이 모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희도, 최린 등은 자신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갈 때 학생들과 경찰이 충돌하여 불상사가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다른 참석자들도 공감을 표시했고, 결국 손병희의 제안에 따라 선언식의 장소를 태화관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태화관은 명월관의 지점으로 여러 모임이 열리던 곳이었다.

3월 1일 오후 1시 반 손병희와 최린, 오세창, 권동진 등은 태화관에 도착했다. 다른 이들도 2시경에 도착하였으며, 4명은 사정 상 참석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학생들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학생 대표인 강기덕은 28일 밤 이갑성으로부터 선언식 장소가 태화관으로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기덕과 2명의 학생은 1일 2시경 태화관으로 달려가 손병희 등에게 탑골공원으로 가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손병희, 최린 등은 탑골공원에서 선언식을 하면 소란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갈 수 없다며 학생들을 되돌려 보냈다.

한편 태화관 선언식장에는 준비해 온 선언문이 참석자들에게 배포되었다. 그들은 각자 눈으로 선언문을 읽었으며, 이를 낭독하는 절차는 생략하였다. 당시 운동을 준비한 이들은 이날 오후 2시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에 독립의견서를 제출하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따라 천도교도인 임규가 도쿄까지 일본 의회에 독립의견서를 제출했고, 경성의전 학생 서영수가 조선총독부에 독립의견서를 제출했다. 태화관에 모인 이들은 총독부에 독립의견서를 제출하면 경찰이 바로 체포하러 오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경찰이 오지 않는 가운데 태화관에 모인 이들은 점심을 들었고, 인력거꾼을 시켜 종로경찰서에 독립선언서 한 장을 보냈다. 이에 비로소 종로경찰서 측은 태화관으로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들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민족대표들은 식사를 마친 뒤, 한용운의 독립선언의 취지에 관한 연설을 들었다. 이때 출동한 헌병과 경찰 수십 명이 태화관으로 달려왔다. 한용운은 “독립선언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것을 경하하자”면서 만세삼창을 제안하였다. 이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삼창을 한 뒤 자동차 편으로 남산의 경무총감부로 연행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며 일행 중 누군가 차창 밖으로 선언문을 뿌렸으며, 종로 거리에 있던 학생들은 만세를 불렀다.

이상이 3월 1일 태화관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부에서는 민족대표들을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3ㆍ1운동의 준비과정에서 기획과 조직, 자금 동원, 선언문 배포 등을 담당하였으며,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쉽고 재미있게 강의를 하는 것은 좋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역사를 희화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특히 그 소재가 독립운동이라면 더욱 그렇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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