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9ㆍ15 대타협 다음날 노동 5대법안 발의 등 밀어붙여
노동계도 민감한 이슈에 대화 거부
한치 양보 없는 평행선 달려
민노총과 연대 가능성 열려 있어
4월 총선 앞두고 충돌 격화 우려
한국노총이 11일 진통 끝에 9ㆍ15 노사정 대타협 파탄선언을 하면서 상황은 노사정 대화가 결렬됐던 지난 해 4월과 비슷해졌다. 정부가 5대 입법 추진에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양대 지침 추진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당분간 노정 관계는 냉각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불도저식 추진 한국노총 반발
한국노총이 사실상 9ㆍ15 노사정 대타협 파기 수순에 들어간 것은 정부가 노동계가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민감한 의제, 이른바 ‘킬 아이템’들을 속도전 식으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업무 확대를 골자로 한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이다.
‘9ㆍ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에서 노사정은 “기간제ㆍ파견근로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규제를 합리화 하자”는 수준으로 했다. 이를 위해 공동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마련 한 뒤 그 합의사항을 ‘정기국회 법안 의결시에 반영’키로 했다. 합의문안에는 기간제의 사용기간 및 갱신횟수와 파견근로 대상 업무,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의 명확화 방안 등을 ‘추가 논의 과제’로 지정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지자마자 정부와 새누리당은 법안을 의결해야 하는 정기국회를 ‘19대 국회’라고 기정사실화했고, 대타협이 이뤄진 바로 다음날인 16일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발의했다. 35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비정규직 기간을 최대 4년으로 연장하는 기간제법 개정이나, 고소득 전문직과 뿌리산업에 대한 파견업무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은 노동계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노총은 지난달 23일 직권상정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권으로 합의문과 다른 내용의 5대 법안이 처리되거나, 정부가 양대 지침을 일방적으로 도입하면 대타협 파기 및 노사정위 탈퇴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불과 1주일 뒤에 전문가 토론회 형식으로 양대 지침에 관한 정부 초안을 공개했고 이때 노정은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노동법 처리가 불투명하니 그 대안으로 양대 지침 카드를 꺼내고, 지침으로 인해 입법이 또 불가능해지는 악순환을 자초했다” 지적했다.
논의 일절 거절한 한국노총도 책임 못면해
정부의 불도저식 ‘노동개혁’ 추진이 노사정 대타협을 파탄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지만, 한국노총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나 파견업무 확대 등을 놓고 정부와 경영계는 안전장치를 마련하며 추가 논의를 요청했지만, 한국노총은 이를 일절 거절했다”며 “노총 내부 세력 간 정치 논리에 대타협이 좌우되는 현실도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소속의 한 연구원도 “정부가 5대 입법 일괄 처리를 강요한 것도 문제지만, 노동계도 한 치 양보 없이 반발하다 보니 근로시간 단축 등 노사가 합의된 부분마저 소득을 거두지 못해 노동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고 평했다.
한편 한국노총의 대타협 파탄 선언에 대해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한국노총은 유보 조건 대신 단호하게 대타협 파기 선언을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양대 노총이 힘을 합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이 본격적으로 연대하게 되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 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지침 도입을 막기 위한 법률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조직적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선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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