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불가의 원전피해마을에 설치미술전시회 개최
관람할 수 없는 전시회 통해 원전피해 부각
미술가 음악인 작가 등 예술활동 이어져
“후쿠시마 사고를 기억하라”는 의도
일본 후쿠시마에는 개막 1년이 넘었지만 누구도 가 볼 수 없는 미술전시가 있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와 비디오 아트그룹 ‘침폼’ 등 12개 예술팀이 참여한 ‘바람을 따라가지 마세요’ 가 그 전시회다. 전시는 후쿠시마 참사 4주기를 맞은 지난해 3월 11일부터 후쿠시마 원전 인근 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방사능 오염이 심해 주민들이 살지 않고 언제 다시 돌아와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어서, 사실상 관람객 없는 전시회가 되었다.
해당 전시 웹사이트(www.dontfollowthewind.info)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다. 흰 바탕에 접속자의 마우스 커서만이 도드라진다. “안녕하세요, 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일본어와 영어 오디오 설명마저 없었다면 페이지 오류로 착각할 법하다. 이어지는 설명에서 이들은 “접근 제한이 풀릴 때까지 계속 볼 수 없는 전시로 남을 것”이라며 “(전시 공개까지) 3년이 걸릴지, 10년이 될지, 혹은 수십 년일 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볼 수 없는 전시회는 애초 의도된 컨셉트다. 참여작가들은 부서진 집이나 갈라진 도로처럼 쓰나미 피해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흔한데 비해,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원전 피해는 이미지화가 어렵다는 점에 고심했다. 그 결과 겉으로 봐선 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땅이지만, 오염 때문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현실을 대중들에게 상기시키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염의 땅 한 복판에 누구도 가 볼 수 없는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결국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 제염이 완료되고, 사람이 돌아와 다시 생명을 지닌 땅이 됐을 때 아마도 이 전시는 비로소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후쿠시마, 예술의 소재가 되다
전시 ‘바람을 따라가지 마세요’의 제목은 한 피난민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제이슨 웨이트 큐레이터에 따르면 이 피난민은 사고 뒤 피난행렬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바람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서둘러 차를 돌려 심한 피폭을 피했다. 제목에 대해 그는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상식은 위기가 닥쳤을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 예술가들은 후쿠시마 현장에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집과 각종 물품 등을 적절히 활용했다. 아이 웨이웨이는 가재도구가 그대로 남겨진 집에 들어가 본래 살던 가족들의 사진을 모두 자기 것으로 바꾸었다. 지붕에는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 실내에 전등을 켜고 마치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연출했다. 집 전체가 전시실이 된 이 작품은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밖에도 인류의 첫 핵실험이 벌어진 멕시코의 돌과 후쿠시마 오염지역에서 수집한 유리를 분쇄해 정육면체 모형을 만들거나(사진작가 트레보 패글렌), 버려진 집들에서 발견한 다양한 패턴들을 이미지로 만들어 인터넷에 무료로 배포(디자이너 에바 앤 프랑코 매터스)하는 작업 등이 있다. “이미 공기 중으로, 바다로 퍼져나간 이상 방사능 문제는 더 이상 일본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참가자들의 말처럼, 이들은 후쿠시마 사고가 일본을 넘어 지구적 문제임을 다룬다.
반면 후쿠시마 출신 예술가들은 지역민들과 아픔을 공유하며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하고 있다. 18살까지 후쿠시마시에 살았던 사진작가 오가와 테츠시씨는 사고가 난 해부터 후쿠시마 아이들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따뜻한 햇살, 파스텔톤의 단정한 실내 분위기, 아이들은 블럭 장난감이나 인형을 갖고 놀면서 환하게 웃는다. 사랑스럽지만 육아잡지의 흔한 화보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여러 장을 모아놓으면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발견된다. 사진마다 창문은 굳게 닫혔고, 오랫동안 나가 놀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은 창백하도록 희다. 놀이터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없다. 여기에 그가 사고 전 기록한 사진들과 비교하면 대조는 더욱 뚜렷해진다.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흙을 만지고 놀던 후쿠시마 아이들의 사진은 흑백으로만 남겼다.
피해 아동들의 적나라한 사진이 흔한 체르노빌과는 다른 접근이다. 오가와씨는 “충격적 사진은 강렬한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슈를 피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원전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부드러운 느낌으로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일본은 물론 한국, 유럽에서 수십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최근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이 사진들을 보여주는 강연도 다닌다. 그는 “내 전시에서 처음으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지도를 봤다는 대도시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후쿠시마 안팎의 정보 차가 큰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예술의 탄생
재해의 상처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예술로 치유하려는 노력들도 이어진다. 2014년 이나와시로에 문을 연 ‘시작의 미술관’이 대표적 예다. 미술관은 일본식 팝아트의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다른 유명 예술가들과 함께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을 돕겠다고 개최했던 뉴욕자선 경매의 수익금을 일부 지원받아 설립됐다. 원래는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이었는데, 이들은 130년 된 창고를 개조해 지역주민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복지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미술관은 ‘아르 브뤼’(Art Brut)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다. 프랑스 미술가 장 뒤 뷔페가 정신장애인의 그림을 예술적 창작물로 인정하면서 쓴 말로, 아웃사이더 예술이자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을 가리킨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표현이다.
후쿠시마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기타리스트 오토모 요시히데씨는 사고가 난 해부터 음악가, 시인들과 함께 ‘프로젝트 후쿠시마!’라는 축제를 조직, 개최해왔다. 매년 일본 최대 명절인 오봉(8월15일)에 열리는 이 축제는 시작부터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행사를 치렀다. 이들은 솔직하게 접근했다. 행사장소의 방사선 수치를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그럼에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재기와 꿈을 응원하겠다며 예술가들을 불러 모았다. 오토모씨는 개최의도에 대해 “쓰나미와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것 때문에 우리는 음악과 시, 예술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며 “예술은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그 방향과 관점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후쿠시마는 역사적으로 저항과 시민운동의 메카로 통했다. 메이지시대 자유민권운동의 불을 지핀 주요 사건도 후쿠시마에서 발생했다. 농협을 일본에서 제일 먼저 시작했고, 고베 다음으로 생협을 설립하기도 했다. 일본 전역에서 두 개의 지역신문을 가진 곳도 아직까지 후쿠시마가 유일하다. 도쿄에서 만난 한 음악가는 “중앙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후쿠시마 시민들이 입을 닫은 모양새지만 보통 탄압받은 땅에서는 강하고 아름다운 예술이 발현된다. 사고 이후 후쿠시마 내부에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탄생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사능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통합할 수 있는 예술의 힘이 지금 후쿠시마에는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도쿄= 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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