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소설가 신경숙씨 표절 논란 당시 화두는 ‘문학 권력’이란 단어였다.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3대 출판사가 자사 문예지와 편집위원을 통해 작가 등단, 책 출판, 비평의 기능을 담당하면서, 문학작품 자체보다 이윤이나 인맥과 친분 등의 이유로 작가를 띄우고 권력을 휘둘렀다는 비판이 주된 내용이었다. 논쟁은 뜨거웠으나 비판의 객관적 근거는 뚜렷하지 않았고 싸움은 감정적 양상을 띠며 흐지부지됐다.
문학 권력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정량적ㆍ통계적 분석이 처음 시도됐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전봉관 이원재 교수, 김병준(석사과정)씨는 ‘문예지를 매개로 한 한국 소설가들의 사회적 지형’이란 논문을 내고 1994~2014년 3대 출판사의 문예지(창비의 ‘창작과비평’, 문학동네의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의 ‘문학과사회’)에 어떤 작가가 등단하고, 어떤 작품이 게재되고, 비평 또는 인터뷰를 통해 호명되고, 책이 출간됐는지를 전수 조사해 총 403명 소설가의 인명 데이터(성별, 나이, 등단지, 등단연도, 대학, 학과, 재직 학교, 재직 학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부 문예지들의 ‘자기 작가 밀어주기’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21년 동안 3대 문예지 중 하나를 통해 등단한 뒤, 작품 게재, 호명, 책 출간까지 한 소위 ‘순혈 작가’의 수는 창작과비평 5명, 문학동네 23명, 문학과사회 20명이었다. 연구자들은 “자사를 통해 등단한 작가를 편애하고 밀어준다는 주장은 창비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문학동네, 문학과사회는 상대적으로 자사가 발굴한 작가들을 최대한 소개하고 홍보했다”고 결론내렸다. 물론 이것이 역량 미달의 작가를 ‘부당하게’ 조명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타 작가 만들기의 정점으로 비판 받은 문학상의 경우, 자사 간행 소설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비율이 창작과비평 39%, 문학과사회 28%(문학동네는 공모문학상)로 역시 자기 작가에게 상을 주는 경향이 눈에 띈다. 자사 포함, 3대 출판사에서 낸 책에 상을 준 비율은 각각 65%, 71%로 치솟는다. 즉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으려면 어쨌든 3대 출판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책을 내는 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연구에 따르면 작가들의 사회인구학적 배경(성별 나이 등단연도 대학 전공)은 문학적 활동량과 성취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문예창작과 출신의 여성 작가는 문학적 성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작가의 배경에 따라 앞으로 이룰 성취도를 일부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자들은 90년대 이후에는 “1970~80년대 창작과비평 대 문학과지성처럼 뚜렷한 문학적 이상과 이념의 차이”를 찾기 어렵고 3대 계간지의 작가 겹치기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분석했다. 특정 계간지에서 작품 게재, 호명, 출간한 작가의 수는 창작과비평 60명, 문학동네 99명, 문학과사회 62명이지만 이중 상당수가 중복돼 다 합치면 150명이다. 즉 작가의 성향과 무관하게 유명해지면 3대 출판사 모두와 관계를 맺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은 1994년 창간한 문학동네의 공격적인 영업 방식이 문예지 간 경계가 흐려지는 데 큰 계기가 됐다고 보았다. 이번 조사에서 문학동네는 다른 문예지, 특히 창비에서 등단, 게재, 호명된 작가들의 책을 출간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자들은 정실주의나 상업주의는 다른 사회적 장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문제는 문학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성찰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주장할 때”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문예지들이 빚어낸 ‘정실주의’는 향우회, 기업집단, 정치 엘리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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