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기습 인터뷰
“최순실 사건 기획한 세력 있다… 崔 자백 강요, 너무 엮은 것”
최순실, 특검 앞서 돌변
“민주주의 특검 아니다… 朴과 경제공동체 자백 강요”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점을 지울 수 없다. 우발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타이밍을 맞춘 듯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박영수(65) 특별검사팀에 강제로 끌려 나온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61ㆍ구속기소)씨는 강압수사를 주장하며 특검을 맹렬히 공격했다. 언론 앞에서 거의 침묵하던 박 대통령과 최씨가 동시다발적으로 공세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한국경제신문 정규재 주필이 운영하는 보수성향의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의 1시간 동안 인터뷰에서 질문에 대한 답 형식이기는 하지만 기획설을 언급하면서 “(나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사실에 근거가 없는 거짓말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공격적인 인터뷰와 수사내용에 대한 대부분의 부인과 반감 표출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보다 체포영장 발부로 이날 오전 특검에 소환된 최씨의 태도가 180도로 표변한 데 있다.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호송된 최씨는 호송차에서 내려 잠시 주변을 살핀 뒤 고개를 세우더니 “여기는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돌연 외쳤다. 구속된 후 언론노출 때마다 고개를 숙였던 종전과 확 달라진 자세다. 최씨는 또 격앙된 목소리로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어요. 너무 억울해요. 우리 애들까지, 어린 손자까지 이렇게 하는 것은…”이라고 항의했다. 지난해 귀국한 뒤 검찰에 소환될 때만 해도 “죽을 죄를 지었다”고 울먹이던 최씨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태우려는 교도관들을 버텨내며 악을 쓰듯이 말을 이으려 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자세변화를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 어렵다. 대통령 탄핵심판 시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국정농단 사건 기획 배후설과 강압수사 주장을 내세우는 양면 공세로 뇌물, 블랙리스트, 비선의료 세 갈래로 진행중인 특검 수사를 흠집 내는 동시에 보수층 결집과 설 민심까지 감안한 고도의 전략적 행동으로 보인다.
특히 최씨의 돌발행동을 비리 혐의를 받는 일개 부녀자의 울분으로 보는 것은 단순한 해석이다. 박 대통령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극소수에게만 자신을 노출시키며 국정을 배후에서 농단하고, 사익을 취한 그간의 행동양상에 비춰보면 그렇다. 이처럼 용의주도하고, 대통령이 의존한 정치적 감각까지 갖춘 ‘은둔의 권력자’가 공개적인 반격을 나선 데는 노림수가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물론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최씨를 “소소하게 심부름을 하면서 충실히 도와준 사람”이라며 최씨의 국정개입, 사익 추구를 몰랐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씨의 공세에 대한 유력한 해석은 자백 강요 등 강압수사 프레임으로 특검 수사의 신뢰도를 추락시킴으로써 국정농단 재판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박 대통령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특히 뇌물수사와 관련된 최씨의 “경제공동체 자백 강요” 언급과 관련해선 박 대통령도 이날 인터뷰에서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심한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수사방향과 관련해 양자의 직간접적 교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경제공동체를 말한 것으로 봐서는 미리 진술을 준비하고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태도변화에는 수사 견제 의도가 농후하다. 특히 최씨는 자백이나 사실관계 확인을 피하기 위한 수사 방해 목적이 뚜렷하다. 최씨는 그간 특검으로부터 7차례 출석 요구를 받았지만 지난달 24일 첫 소환에만 응했을 뿐 건강상 이유 등 핑계를 대며 6차례 출석을 거부했다. 특검이 이에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대응에 나서자 최씨는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도록 강압수사 주장을 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검은 최씨의 주장을 “근거 없는 수사 흠집내기”라고 일축했지만 박 대통령의 견제 발언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보수ㆍ진보 갈등으로 번지는 수사와 탄핵심판의 파장에 비춰볼 때 절차에 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과 최씨 양자의 반격은 특검의 대면조사가 임박하자 강공으로 선회한 것일 수 있다. 삼성 등 대기업 뇌물을 받은 공범으로 지목된 최씨와 박 대통령의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해 뇌물 혐의가 대통령에게까지 미치는 걸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기획설과 무리한 수사 주장이나 최씨의 강압 수사 발언은 수사팀 심기만 건드려 오히려 역효과가 큰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특검은 “법과 원칙에 따라 흔들림 없이 수사를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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