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이 개봉되자마자 극장에 달려갔다. 예상했던 것 보다 관객이 많았다. 연령층도 아주 다양했다. 극장 안 풍경은 여느 때와 조금 달랐다. 팝콘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휴대전화 불빛이나, 감상을 주고받는 연인들의 속삭임 같은 것들이 없었다. 관객들은 빠른 속도로 영화에 빠져 들어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훌쩍이기 시작했고, 그 울음은 모든 관객에게 옮겨갔다. 그리고 열흘 만에 200만명이 이 영화를 찾았다. 개인이 역사에 접속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는 남의 일 같고, 오늘을 살기에 급급한 개개인들의 손에 잘 닿지 않는 영역이다. 전문가들이 잘 만든 작품이라고 후한 평가를 준 것도 아니고, 제대로 돈을 들이거나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현재 예매율 1위고, 당분간 유지될 기세다.
아마도 ‘귀향’을 본 사람들은 나처럼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영화를 꼭 보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입소문은 그 어떤 홍보보다 강력하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 릴레이에 동참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소녀들의 혼이 돌아올 길을 만들겠다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소원과 의지, 그것을 관객들이 같이 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 말하는 ‘애국 마케팅’으로는 이 기적을 만들 수 없다.
제작 기간이 무려 14년. 긴 시간을 익어온 작품이라 더 깊이 가슴에 박히나 보다. 영화가 얼마나 세련되게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의 기술적 요소에 대해 박식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만 읽어온 나는 이 작품에서 흠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완전히 극중 인물들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으며, 극장을 나설 땐 소녀들의 마음을 내 속에 담아올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임철우 장편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사 2010)를 다시 떠올렸다. 아픈 가슴 꼭꼭 눌러가며 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한 여자가 타국에서 겪었던 험난한 여정을 상세히 보여줄 뿐 아니라, 고국에 돌아온 이후의 황폐한 삶에 더욱 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주인공 할머니는 목적지 없는 길을 매일 걷고 있다. 그녀가 힘겹게 끌고 다니는 가방 속에는 고향의 식구들에게 줄 선물로 채워져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간이역처럼 남의 눈을 피해 남은 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쓸쓸한 걸음걸이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영화 ‘귀향’을 보고 나서 다시 그 발자국이 마음에 찍히기 시작했다. 대개 영상은 인간의 상상력을 특정한 이미지들로 표현하면서 더 큰 상상력을 제한해버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활자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문학보다 큰 울림을 갖고 있다.
우리를 꼼짝 못하게 묶고 있는 현재라는 괴물을 이길 힘은 과거의 지혜와 미래에 대한 신념에서 나온다. 과거를 소홀히 대하면 현재는 희미해지고 미래는 사라져버린다. 어떤 학생은 이 영화를 보고 우리 민족이 이렇게까지 혹독한 일을 겪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과거의 그 일이 지금 나에게 지극히 의미 있는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되찾아야 할 민족의 자존심도 생각하고, 우리 곁으로 꼭 돌아와야 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또 그렇게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영화 한 편이 가진 힘이 이리도 크다.
민족의 자존심은 그 민족의 힘이다. 개인이 나라와 민족의 이름으로 겪는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나라와 민족의 문제다. 영화 ‘귀향’은 이런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좋은 작품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보면 좋겠다. 아니다. 나의 간절함이 아니더라도 작품 자체가 가진 힘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