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기자

등록 : 2015.11.10 10:00
수정 : 2015.11.10 10:00

반복과 차이의 마술, 패턴

[봄 더하기 씀] ➆ 풍경의 이면에 숨어있는 ‘코드’ 찾기

등록 : 2015.11.10 10:00
수정 : 2015.11.10 10:00

● 가을이 되면 세상의 색깔은 바뀌고...

길을 가다가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시선을 붙잡는 멋진 풍경들이 너무도 많다. 가을이니까.

나는 싱싱한 생명력을 뽐내는 여름의 나무들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일 뿐이다. 코끝을 맴도는 공기가 싸하니 식어갈 무렵,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코트 깃을 여미는 계절이 되면 그제야 나는 주변을 돌아보곤 한다. 초록이 기운을 잃어 가면 숨어있던 색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울긋불긋 갖가지 모습으로 물들어가는 이파리들이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덩달아 삭막한 아스팔트들도 일부러 살짝 톤 다운된 질감으로 곧잘 배색을 맞춰주곤 한다. 가끔씩 발 밑에서 ‘와삭’하고 으스러지는 은행 열매들이 선사하는 짜릿한 촉감과 후각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 나무는 나무대로, 건물과 길바닥은 또 그대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만드는 은행의 냄새와 마른 낙엽들의 질감은 그것대로 자신이 계절의 주인공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나는 자주 길에 멈춰 서서 그 ‘찍음직한’ 풍경들을 작은 휴대폰 안에 담기 위해 손을 놀린다. 쑥스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만 되면 유난스럽게 계절을 타는 ‘추남(秋男)’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는 것을.

비슷하지만 다른 하트 모양 나뭇잎.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 갖가지 색과 형태로 무늬의 향연 뽐내

눈 밝은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여름의 초록은 그저 ‘일색(一色)’일뿐 별 감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가을에는 사뭇 다르다. 이 시기의 풍경들은 갖가지 색과 형태들로 이루어진 멋들어진 무늬의 향연을 펼쳐 보인다. 자연의 산물인 나무와 풀이 탈바꿈한 모습에 사람들이 만든 건물, 도로, 조명들이 가세한다. 이를 포착하는 사람의 시선이 수고스럽게 적당한 각도와 구도를 잡지 않아도 도처에 풍경화가 널려 있는 계절이다. 수만 가지 색과 음영과 질감을 뽐내면서 미묘하게 겹쳐져 있는 이파리들을 보라. 저 멀리 희붐하게 흐린 가을하늘과 건물이 보인다. 각각의 잎들은 엇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형태와 질감을 갖고 있다. 마치 선율을 만들어내는 음표들처럼, 각양각색의 형태들을 하나의 조화로운 이미지로 엮는 힘, 바로 패턴(pattern)이다.

일정한 무늬와 간격으로 세워진 철제 울타리(사진 위). 빌딩 유리창 일부에 앞 건물이 반영됐다(아래).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 패턴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

패턴은 반복과 차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시선의 마술이다. 패턴을 통해 다양한 것들은 하나가, 하나는 다양한 개체가 된다. 앞에서 본 사진들처럼, 패턴은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풍경의 이면에 모습을 숨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자마자,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모종의 패턴을 찾는다. 그렇게 찾아낸 패턴은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창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패턴이라는 틀을 거치지 않으면 사실상 보아도 거의 ‘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자연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말해 무정형의 대상을 지각 가능한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해 패턴을 끊임 없이 찾고, 심지어는 발명해온 것이 아닐까? 한여름의 쨍한 햇볕보다도, 푹푹 찌는 단조로운 날씨보다도, 찬 비 한번 맞으면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잎과 변덕스런 구름장 아래 물 빠진 톤으로 우중충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물들이 패턴을 찾기에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가을이 오면 도시는 그 자체로 거대한 피사체가 된다. 이 패턴의 오케스트라를 한 눈에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렌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장 선 잎을 따라 군무하듯 전진하는 담쟁이 덩굴.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 DNA를 따라 대대손손 이어져 온 숨은 명령

잠깐, 그렇다고 패턴이 자연을 길들이기 위해 발명한 인간 고유의 도구라고 생각하면 이는 큰 오산이다. 자연 쪽에서 보면 길들여진 것은 오히려 인간 쪽일지 모른다.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보건 말건, 자기편에서 볼 때 있으나마나 한 관심을 베풀건 말건 자연은 항상 일정한 질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이를 착실하게 지켜오지 않았던가. 자로 잰 듯 규칙적인 비율로 배열된 잎을 뻗고 척박한 곳에 수직으로 붙어 길을 내는 덩굴에게 패턴은 아마도 DNA에 들어있는 수많은 생존 지침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꽃잎이 달릴 때도 일정한 패턴을 따르기 마련인데 이를테면 3, 5, 8, 13, 21, 34, 55, 89… 등으로 나타난다. 백합이나 보춘화는 3장, 자두, 살구, 복숭아, 능금, 채송화, 동백은 5장, 모란, 수련, 참제비고깔은 8장, 금잔화는 13장의 꽃잎을 갖고 있다. 그리고 국화과의 애스터는 21장이고 데이지는 대개 55장 또는 89장의 꽃잎을 갖는다. 또한 전나무도 이러한 개수로 열매를 맺는다. 이런 숫자를 정리해서 만든 것이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ries)’이다. 신기하게도 이 수열에선 앞의 두 수의 합이 바로 뒤에 이어지는 수가 된다. 어쩌다 잎사귀들을 보고 이런 생각을 떠올리긴 했지만 새삼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법칙들을 들춰내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패턴에 대한 생각 역시 백팔십도 바뀔 수밖에 없다.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규율이 이미 주어져 있는 이상, 자연의 일부인 인간 역시 우주의 질서에 따라 세계를 보고, 인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터, 오히려 패턴은 인간이 주어진 틀에 종속되어 있는 개체임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닐까? 패턴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 역시, DNA을 통해 대대손손 이어져 온 숨은 명령에 따르려는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인간은 자신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노력이 오히려 자연의 법칙에 속박당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또 그도 그럴 듯해 보인다. 끄트머리를 바삭하게 물들이며 달라붙어 있는 담쟁이덩굴의 잎사귀를 세거나 다닥다닥 붙어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고 감탄하는 가을 남자의 ‘미감’이란 게 사실은 유전자 아니면 사십대 남성의 몸에 흐르는 호르몬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동물의 반응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패턴을 찾고, 바라보면서 감탄하고 애상에 젖는 남자의 일상이 바로 패턴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 가운데 단 한 번, 이렇게 나는 계절을 타곤 한다. 내년 이맘때도 나는 틀림없이 잎을 세고, 바뀌는 계절의 풍경을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겠지.

퇴근길 강변북로를 지나는 차량 불빛들의 행렬.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 카메라는 일상의 모습을 추상화로 ‘환치’

위의 사진은 퇴근길 차량들 행렬의 모습을 500mm의 반사렌즈로 담은 것이다. 흔하디흔한 풍경을 진기한 한 폭의 추상화로 확 바꿔 버리는 카메라의 마술을 굳이 이 글에서 또 주워섬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원들이 주르륵 붙어있고 심지어는 같은 자리에 겹쳐 있는 걸 보니 아마도 꽤나 체증이 심한 도로에서 찍었으리란 심증이 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막히는 도로. 생각만 해도 짜증이 밀려드는 풍경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찍고 보니 웬걸,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아기자기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당연히 차의 종류가 다를 터이니 거기서 나오는 불빛의 조도와 색감이 같을 수가 없는데, 무슨 주문을 걸었기에 이렇게 일정한 크기와 모양새를 갖춘 동그라미들로 변신했을까, 볼수록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로 아름답지 않고 특이할 것도 없는 인간사, 맨눈으로 마주하면 보기 싫은 것 천지지만 이렇게 살짝 바꿔놓으니 또 볼만한 장면이 나온다. 미우나 고우나 내가 사는 한 세상인데…… 마음을 고쳐먹고 보니 숨어있는 패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인간의 문명이 만들어낸 저 불꽃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날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큰 패턴의 일부이며, 그 패턴에 기대지 않고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하면 우리도 좀 겸손해질 텐데.

● 편집이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는 일

생각해보면 신문 역시 패턴을 만드는 일에 속한다. 온갖 잡다한 인생사,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이 존재하는지 망연자실하게 만드는 사건들, 때로는 저널리즘 자체의 존재 가치를 두고 회의에 빠지게 할 만큼 난폭하게 밀어닥치는 일상들, 내적 외적 요인에서 비롯된 다양한 갈등...... 이들을 한데 모아 잘 길들여 한정된 틀 안에 넣어야 한다. 혼돈에 숨어 있는 패턴들을 끄집어내어 질서를 부여하는 일, 다양한 차이와 반복을 다스리는 일, 나는 하루도 그 작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온통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아직 그 안에는 인간적인 형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그 패턴을 포기하면 다 끝장이다, 라는 심정으로 나는 편집기자에게 주어진 하루치 일상을 버텨낸다. 변함없이 돌아오는 계절처럼, ‘인간적인 것들의 위엄’이란 패턴을 포기하지 않기를...... 모쪼록 그렇게 될 수 있기를...... 혼돈이 깊을수록, 패턴도 오묘해지기 마련이다.

이직 기자 jklee@hankookilbo.com

작년 11월 19일자 View &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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