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은 부미푸트라… 인구 24% 중국계가 경제 장악, 빈부차 줄이려 헌법에 특별 규정
종족정치에 변화 조짐… 작년 총선 집권 여당 승리했지만 득표수에선 야당이 되레 앞서
선진국 목표 비전2020… "전근대적 정책 국가경쟁력 발목" 야당이 집권한 州에선 폐기 움직임
지난 4월 아시아 순방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다음으로 방문한 나라는 말레이시아였다. 린든 존슨 이후 거의 반세기만의 미 대통령 국빈방문이었지만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양국 관계를 ‘포괄적 동반자’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한 정도가 거의 전부인 듯 보일 정도였다.
미국이 말레이시아에 기대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는 중국을 견제하는데 동남아시아 역내에서 말레이시아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 또 하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조속한 체결이다.
TPP 협상에서 미국과 말레이시아는 기업의 경쟁조건, 의약품 특허기간 등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와 관련해 정상회담에서 “국익”을 고려해 조정을 계속해가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의 국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꼭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부미푸트라’ (Bumiputra) 라는 말이다.
부미푸트라는 중국계 견제 장치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3개의 연방으로 구성된 연방제 나라다.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말레이시아 내 여러 종족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는 의원내각제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종족성에 기반을 둔 독자적인 정치문화를 탄생시켰다. 흔히 ‘종족집단 간 거래’로 표현되는 말레이시아의 ‘종족 정치’는 말레이계, 화인계(華人係ㆍ중국계), 인도계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뿐만 아니라 각 종족에 속한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그 종족 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말레이계와 화인계의 빈부 격차를 줄일 목적으로 경제, 교육 등 전 분야에서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미푸트라 정책이다. 부미푸트라는 ‘땅의 자손들’이라는 뜻으로 말레이 원주민과 토착민을 일컫는 말레이어다. 말레이계는 말레이시아 인구의 60%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경제 실권은 24%에 불과한 화인들이 장악하고 있어 말레이계의 불만이 많았고 실제로 1969년에는 이 때문에 인종폭동이 일어나 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당시 제정한 헌법에 이미 말레이인들의 특별한 지위를 규정해놓고 있다. 헌법 제153조에는 공무원 채용, 정부의 장학금ㆍ훈련 기회 부여, 공공사업이나 정부조달, 정부의 허가ㆍ라이선스 등에서 말레이인과 선주민에게 일정 비율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부나 국유기업 조달에도 부미프라트 기업이 우선이고 외국기업의 참가는 매우 제한돼 있다. 말레이시아가 TPP 협상에서 “국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같은 부미푸트라 기업 우대정책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흔히 볼 수 없는 사정도 담고 있는 것이다.
부미푸트라 정책이 시행되고 40년 이상이 지나면서 말레이시아 내 종족집단 간 경제적 격차는 많이 해소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빈곤율은 1976년 42.4%에서 1990년에 17.1%까지 줄었고 이중 말레이계의 빈곤율은 56.4%에서 23.8%로 감소했다. 종족별 평균수입도 1970년에는 말레이계가 세대당 172링키트(5만6,000원)이던 것이 1990년에는 931링키트(30만6,000원)까지 올랐다. 중국계와 차이는 여전히 나지만 절반에도 못 미치던 폭이 일정 부분 개선된 건 사실이다.
반세기만에 종족정치 변화 조짐
그러나 2008년 제12대 총선과 지난해 제13대 총선은 이러한 말레이시아 정치의 판도와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다. 말레이시아 정치의 탈종족화 과정이 12대 총선에서 시작돼 13대 총선에서 더욱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정치를 지배해온 것은 줄곧 정권을 잡아온 국민전선(BN)이다. 13대 총선에서는 유권자 1,290만 명 중 80%가 선거에 참여해 여당인 BN이 222석 중 133석을 확보하였으며, 야당은 89석을 차지했다. BN은 522만 표를, 야당인 국민연합(PR)은 548만 표를 획득했다. PR이 26만 표를 더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BN이 승리하자 여야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정권은 여전히 BN이 잡았지만 표가 분산되면서 야당인 민주행동당(DAP)과 국민정의당(PKR)의 의석 수가 증가했다.
인종이나 종족과 종교, 계급과 계층 문제가 큰 이슈가 된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BN은 505석 중 총 275석을 차지했고, 230석이 PR에 돌아갔다. 13대 총선에서 PR의 선전은 PR이 다양한 민족으로부터 지지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동부 말레이시아에서 PR의 선전은 새로운 변화의 신호로도 읽힌다.
이런 총선 결과가 부미푸트라 정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국민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화인들이 현 정부의 부미푸트라 정책에 반발해 대거 야당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미푸트라 정책으로 정치와 행정 부문에 대한 말레이계의 권한과 영향력이 커지자 이에 화인계와 인도계의 불만이 예전에 비해 크게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야당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은 거듭 부미푸트라 정책의 폐지를 주장했다. 이 정책 때문에 국가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이유다. 야당이 집권한 주에서는 소수 집권당 측근들만 특혜를 누리도록 조장했다는 이유로 부미푸트라 정책을 폐기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부미푸트라에 대해서는 마하티르 전 총리도 과거 “부미푸트라가 정부 의존 체질이 된다”거나 “부미푸트라가 우선 따낸 라이선스로 창업을 하기 보다 그 권리를 비부미푸트라에 팔아 넘겨 돈을 벌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비판 불구 나집 정부 되레 부미푸트라 강화
그러나 총선 이후인 지난해 9월 나집 라작 총리는 국영방송 연설을 통해 ‘부미푸트라 경제권한 의제’를 재정비해 종전의 기조를 더욱 강화한 신 부미푸트라 정책을 발표했다. 나집 총리는 “2012년 화인들과 부미푸트라의 월 평균 소득비율이 1.43 대 1의 비율을 기록했다”며 “지금도 인종이나 종족집단 간의 소득 차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미푸트라의 주식자본보유비율이 목표의 30%에도 못 미치고 기업경영 실효지배율도 10%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인종과 종족, 민족 간의 균형과 평화의 달성 없이는 우리의 공통 목표인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비전 2020)’는 꿈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집 총리는 당시 부미푸트라 정책을 강화하는 다섯 가지 전략까지 제시했다. 부미푸트라 인적자원개발 강화, 투자신탁 확충을 통한 기업의 말레이계 출자비율 확대, 부미푸트라 주택보유 확충, 부미푸트라 사업 자금 융자 확대과 정부 조달 우선 발주, 부미푸트라 경제강화를 위한 행정조직 개혁 등이다.
‘특정 인종이나 종족에 대한 특혜’라는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집 총리가 부미푸트라 정책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말레이계 강경파 세력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2010년 집권한 나집 총리는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부미푸트라 정책 전면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말레이계 강경파들은 그에게 부미푸트라 정책의 확대를 요구해 왔다.
부미푸트라 정책 폐기 요구 갈수록 높아질 듯
하지만 야당은 신 부미푸트라 정책 실시에 대해 “전근대적인 정책”이라며 “진정으로 인종 간 균형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오랑 아슬리(Orang Asli)를 위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비판한다. 오랑 아슬리는 지금도 톡특한 문화와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소수 선주민들이다.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미푸트라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전 2020’의 ‘말레이시아인을 위한 말레이시아’ 슬로건에는 다문화, 다종족, 다종교인 말레이시아가 다름을 버리고 하나가 돼야 한다는 국가통합의 원리가 담겨 있다. “부미푸트라와 비부미푸트라를 구분하지 않고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말레이시아 정치 변화의 방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국민가수 수디르만은 ‘쿨릿(Kulitㆍ피부)’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다른 색깔의 피부/ 꼬집으면 아프고 햇볕엔 뜨거운데/ 단지 그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갈라놓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되지.”
12대, 13대 총선에서 종족성을 넘어 실용을 중시하는 투표 행태가 나타난 것이 이 같은 말레이시아 여론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말레이시아가 종족정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종전의 부미푸트라 정책에 대한 재고를 포함하는 새로운 정책 전환을 모색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음 2018년 총선까지 말레이시아 집권 세력이 이 같은 민심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해 갈 것인지 주목된다.
홍석준 목포대 교수ㆍ한국동남아연구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