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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전거 민폐족을 만드나

입력
2015.09.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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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자전거 전용칸을 차지한 승객들. 자전거족의 잘못도, 승객의 잘못도 아니다.
지난 주말 자전거 전용칸을 차지한 승객들. 자전거족의 잘못도, 승객의 잘못도 아니다.

“어휴~ 좁은 지하철에 왜 자전거를 끌고 와” (수근수근)

오늘 토요일인데… 주말엔 괜찮거든요? 입술이 달싹이지만 참는다. 혹여 말싸움으로 번지면 ‘자전거족=민폐족’ 등식만 굳히겠지, 하고 혼자 분을 삭이며 몸과 자전거를 벽에 바싹 붙였다. 서울 지하철의 열차 처음과 마지막 칸은 주말마다 자전거 승차공간으로 변하지만 규정을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홍보도 부족하고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전용칸이 열차마다 달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온라인 자전거 커뮤니티에는 지하철에 얽힌 하소연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정당한 방법으로 탔는데 승객 항의에 쫓겨났다는 울분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지하철 승차, 주말에도 힘들어요

일반 전동차에선 자전거족과 일반 승객 모두 고생이다. 통로를 막지 않으려면 주차 가능한 곳은 양 끝 출입구 근처뿐. 당연히 거치대는 없다. 그래서 피곤해도 자전거를 붙들고 서서 가는 자전거족이 많다. 승객이 적을 땐 벽에 기대어 두기도 하지만 열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마음이 떨린다.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승객을 친 일이 더러 있는 탓이다. 그나마 확보한 주차공간은 자전거 서너 대를 세우면 꽉 찬다. 아무리 조심해도 자전거가 승객 몸에 부딪히기 쉽다. 여기에 주말 저녁 귀가 인파가 몰리면? 싸움 나기 딱 좋다. 나들이옷에 타이어 자국 났는데 웃어 넘길 사람 드물고, 자전거족도 나름대로 쌓인 게(?) 많으니 분위기가 험악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지난 토요일 1호선에서 만난 자전거 이용자들. 벽에 기대어 세운 자전거가 쓰러질까 불안하다. 정당하게 탔지만 혹여 비난받을까 싶어 주인들의 얼굴을 가렸다.
지난 토요일 1호선에서 만난 자전거 이용자들. 벽에 기대어 세운 자전거가 쓰러질까 불안하다. 정당하게 탔지만 혹여 비난받을까 싶어 주인들의 얼굴을 가렸다.

사고가 일어날까 불안하기도 하다. 자전거족이 애용하는 경춘선의 경우, 전용칸이 마련돼 있지만 주말 수요를 감당하기엔 거치대가 턱없이 부족하다. 규정을 따르자면 자전거 정면이 차창을 마주보게 주차해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10여대 세우기에도 거치대가 모자란다. 결국 자전거를 차창과 평행하게 주차하기 마련인데 수십 대가 겹겹이 쌓이면 타고 내리기 불편함은 물론, 비상상황에선 승객의 탈출도 방해한다. 일부 자전거족은 자전거 안장을 지하철 손잡이를 지탱하는 쇠막대에 걸기도 한다. 공중에서 덜렁거리는 자전거가 안전할 리 없다.

●사라진 전용칸을 찾아서

대체 자전거 전용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경춘선이 거치대는 부족해도 애초에 전용칸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시내 지하철에 비하면 천국이다. 시내 지하철에선 전용칸은 도깨비와 같다. 언제 운행하는지 예고는커녕, 자전거족이 몰릴 때는 어디 숨었는지 찾을 수 없다가 한낮에 텅텅 빈 채로 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자전거 승차가 금지된 평일에 일반 승객을 한 가득 싣고 달리는 경우도 많다. 하다못해 자전거족이 몰리는 시간만이라도 전용칸을 집중적으로 운용한다면, 자전거족과 일반 승객 모두 편할 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지난 토요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자전거 대신 승객들이 자전거 전용칸을 차지했다. 자전거 전용칸이라면서도 자전거 이용자가 몰리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운행하는 탓이다.
지난 토요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자전거 대신 승객들이 자전거 전용칸을 차지했다. 자전거 전용칸이라면서도 자전거 이용자가 몰리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운행하는 탓이다.

그래서 지하철 운영 3사에 물어봤다. 시내 지하철 전용칸은 언제 탈 수 있냐고. 그랬더니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선 “알 수 없다”는 답변이, 코레일에선 “6번”이란 답신이 돌아왔다.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되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운행계획이 이렇게 불규칙하거나 적어서는 이름만 자전거 편의시설이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서울메트로의 경우, 전체 전동차 중 1954량 중에서 자전거 전용칸이 차지하는 비중은 2%(40량)에 불과하다. 그마저 정비 때문에 정해진 일정 없이 운행하므로 자전거족이 제대로 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상황은 비슷했다.

자전거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정부와 서울시에서 권장해왔고, 이용객도 늘고 있는데 인프라가 너무 부족하지 않나, 물었더니 역시나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서울도시철도의 경우, 2009년 수립된 서울시 계획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평일에도 자전거 휴대 승차를 허용하는 방안을 세웠지만 인프라 개선 작업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자전거용 계단 경사로는 3년 전부터 19개역에 설치를 마쳤지만 나머지 87개역은 기약이 없다. 여기 필요한 예산은 9억여 원. 전동차 전체를 개조해야 하는 전용칸은 언제 마련될지 알 수 없다.

●자전거족과 일반 승객들이여, 불평하세요

신기한 일은 불편을 느끼면서도 드러내는 사람은 드문 점이었다. 취재하면서 만난 자전거족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엔 “아, 그래도 자전거족이 참아야죠” 라고 말을 맺었다. 정부나 지하철 운영사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시피 했다. 일반 승객 역시 “서로 참으면, 배려하면 괜찮다”는 반응이 많았다.

배려는 좋은 가치다. 그러나 불편을 참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참기만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자전거로 지하철을 타는 것은 불편한 일로 남고, 불편하니까 타기를 피하고, 자전거 휴대 승객이 늘지 않으니 회사들이 시설에 투자할 이유도 없다. 코레일 관계자의 “(설치)해도 어차피 평일엔 텅텅 비어요”라는 푸념이 틀린 말이 아닌 셈. 악순환 속에 네덜란드 같은 자전거문화는 영영 보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에선 시민단체들이 자동차 도로를 이용한 자전거 출근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도로를 점령하라’는 자극적 구호까지 나온다. 자전거가 많아질수록, 자동차 운전자들이 자전거족을 신경 쓰고, 사고가 줄어들고, 더 많은 자전거가 거리로 나오고, 정부가 자전거 시설에 투자하고, 교통정체나 환경오염이 줄어든다는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실제로 영국에선 자전거 출근자가 많은 도시의 자전거 사고율이 다른 도시보다 낮다고도 한다(자전거 권익단체인 CTC자료).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도로를 점령하거나 승객이나 자동차 운전자와 싸울 필요는 없다. 그저 불편한 점을 차근차근 꾸준히 설명하면 그뿐이다.

#참고(회사별 운영 지하철 노선)

서울메트로: 1, 2, 3, 4호선과 9호선 일부 구간.

서울도시철도: 5, 6, 7, 8호선

코레일: 경의선, 중앙선 등

김민호기자 kimon8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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