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까지 교육ㆍ의료 보장하는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 발의
영주권 정책 적극적으로 편다면 이주노동자 소비 年 50조원 달할 것
이민ㆍ다문화 관련 컨트롤타워 없어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치해야
“미등록 이주아동도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국내에 있을 때는 교육과 의료 혜택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방치해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미리 방지해야 하니까요.”
이자스민(39)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사회 안전과 국민 건강을 위해서도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은 꼭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은 이주 아동에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법안이다. 이주 아동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부모가 미등록 상태이거나 합법적 체류기간이 만료됐더라도 출생 등록을 할 수 있고 만 18세가 될 때까지 교육ㆍ의료 등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자스민 의원이 대표발의했고 강창희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이인제 정병국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박영선 우상호 김태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22명이 함께 한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법들도 통과가 안 되는 상황이라서 이번 국회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18대 국회에서도 거의 같은 법안을 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임기 내 논의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법안 심사가 진행되지 못한 데는 여론의 심한 반대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자스민 의원은 “법사위 게시판에 댓글이 1만 5,000여개 달려 역대 법안 중 최고 기록을 세웠다더라”며 “대부분 반대 의견이 많은데 세금도 안 내고 일자리 빼앗아가고 군대도 안 간다는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필리핀 출신인 이 의원은 대학 생물학과를 다니던 중 한국인 남편을 만나 1995년 결혼했다. 이듬해 한국에 와 2년 뒤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주 여성과 다문화 가정을 위한 활동을 펴는 한편 영화 ‘의형제’ ‘완득이’ 등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5번으로 당선한 국내 첫 귀화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국회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수많은 편견에 시달려야 했다. “우리말 다 이해하겠냐”고 묻거나 “이주 여성이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는 동료 의원들의 비난은 약과였다. 그의 의정 활동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숨어 있던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가 분출하듯 했다. “동료 의원들도 그런 말씀을 해요. 제가 국회 들어오기 전까진 우리나라가 정말 자유민주적이고 세계적이며 국제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요. 제노포비아가 이렇게 심한 줄 몰랐던 거죠.”
이자스민 의원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앞서 가는 선진국은 대부분 전통적으로 이민 국가”라며 “한국은 해외로 내보내는 이민만 알았지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을 위한 이민 정책이 제대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 체류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통계자료도 없다. 5,000명 정도라는 추산도 있고 2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의원은 “몇 만 명이 되는지도 모르는 미등록 이주아동이 사각지대에 놓여 범죄나 질병 등에 노출이 되면 이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의 일부는 현재 부분적으로는 시행되고 있다. 특별한 사정을 법무장관이 인정하면 시행령에 따라 이주아동이 특별체류자격을 받을 수 있다. 새 법안은 이 시행령에 따라 특별체류자격을 받은 아동이 기간이 종료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부모의 강제퇴거를 유예하는 내용을 추가로 담고 있다.
이자스민 의원은 이주노동자가 한국 경제에 기여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 청년들이 일하기 꺼려 하는 중소기업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며 그 돈을 다시 한국에서 씁니다. 지금처럼 체류기간을 제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영주권을 주는 이민정책을 쓴다면 이들의 국내 소비 규모가 연간 50조원에 달해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국내 외국인 장기 체류자는 급속도로 늘어나 지금 200만 명을 헤아리지만 이들을 위한 법과 정책은 그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민 정책이 허술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낮고 그 때문에 이민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한 가지 이유다. 이자스민 의원은 “4년간 이민과 다문화 관련 법안을 준비하면서 우리 의원실 직원들이 모두 전문가가 됐다”며 “국내에 사는 5%의 이주자ㆍ이민자를 대표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해 이민과 외국 인력 정책을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이민ㆍ외국인ㆍ다문화 정책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를 진전시킬 계획이다. 이자스민 의원은 “20, 30년 후의 한국 모습을 그리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민과 외국인, 다문화를 다루는 독립 부처나 기관이 없습니다.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부서마다 따로 사업을 펼치고 그마저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제대로 사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산하 기관으로 만들어서 수시로 회의하고 답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이자스민 의원은 그 동안 ‘최초’라는 타이틀이 늘 부담이 었다고 한다. “‘내가 잘못하면 두 번째는 없다’는 생각에 살얼음판 걷는 느낌”이었다는 그는 “4년이 지나니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4월 총선에 대해서는 “비례대표가 아니면 사실상 출마가 어렵다”며 “공천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고 19대 때도 막판에 비례대표에 포함됐으니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국회의원을 계속하든 못하든 지금까지 해온 일을 그만 두지 않고 계속 해갈 겁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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