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유럽연합(EU) 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돼 온 영어가 위협 받고 있다. 28일(현지시간) 유럽의회에서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영어를 제외한 불어, 독어로만 연설을 진행해 영어의 공용어 지위 탈락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AP통신은 융커 위원장이 영국 국민들의 탈퇴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공식 연설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로만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룩셈부르크 출신인 융커 위원장은 이전까지 영어가 EU 내 가장 자주 사용되는 언어인 만큼 영어를 선호해왔다. 때문에 융커 위원장의 영어 사용이 브렉시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선택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융커 위원장은 영국 출신 유럽의회 의원들이 연설에 야유를 퍼붓자 다시 영어로 대응해 이러한 관측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EU 내 ‘영어 보이콧’ 움직임이 실제 공용어 지형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터무니 없는 주장만은 아니다. 현재 EU는 28개 회원국에서 지명한 24개 언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다. 영어를 선택한 것은 영국뿐이고, 영국만큼 영어를 널리 사용하는 아일랜드는 게일어(캘트어)를 몰타는 몰타어를 지명했다. 즉 영국이 EU를 떠나면 영어를 공식 언어로 지목한 국가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명분도 없어지는 것이다.
브렉시트 결정 후 EU의 영어 거부 움직임은 잇따라 포착되고 있다. 마르가르티스 시나스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27일 정오 정례 브리핑에서 프랑스어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영어와 프랑스어를 번갈아 써온 시나스 대변인은 이날 일부 영어 질문에만 영어로 답해 일부 참가자들의 불평을 샀다. 한 참가자는 트위터를 통해 “오늘 브리핑에 (영어 사용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인지 불어 사용자가 더 많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7분 동안 영어를 들을 수 없었다”고 불평하며 “제1 언어로 불어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어는 이미 EU 회원국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만큼 무조건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영어는 외교관들의 언어로 여겨졌던 프랑스어를 오래 전 대체했고 독일어 또한 존재감을 잃은 상태라 가장 선호 받는 언어가 됐다. 이에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어가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 출신의 외교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영어에 ‘오 흐부아’(프랑스어로 작별 때 인사)를 건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영어 잔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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