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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적금 아시나요] “1포인트라도 더 늘리자” VS “단맛 빼먹는 고객 줄여라”

입력
2017.09.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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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가서비스만 이용 ‘체리피커’

카드사들 대책 마련에 골몰

혜택 까다롭게 ‘개악’ 하거나

그마저 안 되면 발급 중단

#2

NH농협카드-SK플래닛의 ‘시럽’

발급할수록 적자 늘어 법정 다툼

소비자가 카드사와 소송 벌이기도

“체리피커 배척 말고 신뢰 얻어야”

신용카드 부가 혜택을 둘러싼 카드사와 고객 사이의 밀고 당기기는 ‘체리 전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제도적 빈틈을 이용해 각종 혜택을 챙기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체리피커(cherry picker)’들은 포인트 1점, 마일리지 1마일이라도 더 얻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적금을 붓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온갖 신공을 발휘한다. 카드사가 고객에게 제시한 혜택인 만큼 100% 누리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이다. 반면 카드사는 체리만 쏙 빼 먹으려는 고객들에 대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매력적인 부가서비스로 고객을 유혹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수익은 기대 만큼 나오지 않아 적자가 쌓이는 난처한 상황에 몰리기 때문. 창과 방패의 치열한 신경전은 때론 법적 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

적자 줄이기 위한 ‘포인트제도 개악’

예상보다 카드 적자폭이 커지면 카드사들은 ‘개악(改惡)’이라는 수비전략을 가동한다. 카드사와 제휴사가 처음 카드가입 고객을 유치할 때 크게 광고한 부가서비스 혜택들을 나중에 활용 조건을 까다롭게 하거나 혜택 자체를 대폭 줄이는 식으로 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고객에게 불리한 약관 변경을 ‘개악’이라고 부른다.

삼성카드가 2000년대 초반 ‘에버랜드 무료입장’이라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나중에 ‘전월 결제금액 ○○만원 이상’의 조건을 걸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NH농협카드와 SK플래닛이 손잡고 내놓은 ‘NH올인 시럽카드 사태’가 업계의 뜨거운 이슈다. 두 회사는 지난해 4월 카드를 출시하며 SK플래닛의 모바일 쿠폰 앱인 시럽을 통해 전달 실적의 5%만큼 모바일 할인 쿠폰(최대 10만원, 체크카드는 그 절반의 쿠폰 지급)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앱으로 내려받은 쿠폰은 영화관, 편의점, 주유소 등 26개 제휴사의 3만개 이상의 가맹점에서 쓸 수 있었다. 기존 카드들이 기껏해야 결제 금액의 2~3%를 포인트로 적립해 주는 것을 감안하면 5%는 파격적이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2015년 상반기까지 가장 적자를 많이 낸 카드들 중 상당수는 발급 중단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을수록 적자 카드가 될 확률이 높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2015년 상반기까지 가장 적자를 많이 낸 카드들 중 상당수는 발급 중단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을수록 적자 카드가 될 확률이 높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눈밝은 소비자들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출시 석 달 만에 시럽카드 가입자(체크카드 포함)는 10만명을 넘었고, 6개월 만에 34만명을 찍었다. NH농협은 6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14일로 신용카드 발급을 중단(체크카드는 12월에 중단)했다. 기존 카드 가입자에 대한 갱신도 허용하지 않아 최종 가입자 45만여명이 5%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고객이 됐다. 카드 발급 중단 전날(10월 13일)과 당일 막차를 타기 위해 농협은행 창구에는 2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몰렸다.

이 와중에 두 회사는 기존 1만, 2만, 4만, 8만, 10만원 권으로 지급되던 쿠폰을 5,000원, 1만원권만 발행하기로 하고 한꺼번에 여러 장을 쓸 수 없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이전에는 주유소에 가서 4만원 할인쿠폰으로 한꺼번에 4만원어치 주유가 가능했지만 제도가 바뀐 후에는 4만원어치 쿠폰을 쓰려면 주유소를 4번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객들은 ‘쿠폰 쓰는 절차를 복잡하게 해서 덜 쓰게 하려는 꼼수’라며 들고일어났다. 고객들의 반발에 카드사는 하루 만에 쿠폰 중복 사용을 허용했다. 카드사 입장에선 고객 신뢰만 잃고 실속도 차리지 못한 꼴이 됐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라고 말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니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성급하게 움직인 것인데, 요즘 고객들은 어설픈 기업들의 시도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섣불리 나섰다가 되치기를 당하기 십상이죠.”

“입소문 나면 십중팔구 적자카드”

가입 회원 50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스사사'의 모습. 화면 캡처
가입 회원 50만명이 넘는 네이버 카페 '스사사'의 모습. 화면 캡처

부가서비스 제도를 개악해도 비용부담이 줄지 않으면 카드사들이 꺼내는 최후의 카드는 발급 중단이다. 카드사는 신용카드를 마음대로 발급 중단할 수 없고, 최소 5년은 유지해야 하지만, 카드 운영으로 적자가 늘어날 경우 발급을 중단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알짜 카드라는 입소문이 나서 가입자가 늘수록 적자 카드 될 확률이 높다’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카드사들이 처음 카드를 만들 때는 온 힘을 다해 가입자를 늘리려 하다가도 ‘고객에게 알짜, 카드사에게 적자’를 안겨주는 카드에 대해서는 일부러 마케팅을 하지 않고 해마다 수십 종의 카드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아이러니가 되풀이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3~2015년 매년 적자규모가 가장 컸던 고급형 신용카드(연 회비 10만원 이상) 10위 안에 들었던 카드 22종 중 10개(45%)가 지금은 발급되지 않는다. 연회비 10만원 미만의 일반형 카드 20개 중 5개(25%)도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새 카드가 나오면 고수들이 어떤 부가서비스를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가입자 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카드사들도 평소 온라인을 살피며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처하지만, 소비자가 한 걸음 앞서 간다고 업계 관계자는 하소연한다.

NH농협과 SK플래닛 사이에 법적 소송까지 진행 중인 NH올인시럽카드.
NH농협과 SK플래닛 사이에 법적 소송까지 진행 중인 NH올인시럽카드.

적자 카드를 두고 카드사와 제휴사 사이에 낯뜨거운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NH농협카드와 SK플래닛은 대표적 적자 카드인 시럽 카드를 두고 법적 소송 중이다. 시럽카드 때문에 지난해 9개월 동안 90억원 가까운 적자를 본 SK플래닛이 올해 1월부터 제휴 관계를 끊겠다며 시럽 쿠폰 발행을 중단했고, NH농협 측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걸었다.

당초 두 회사는 SK플래닛 측이 고객에게 먼저 시럽 쿠폰을 제공하면, NH농협 측은 나중에 카드 결제액의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SK플래닛 측에 주는 사후 정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NH농협 측은 수입 중 일부를 나눠 주는 것이지만, SK플래닛은 고객과 약속한 적립률에 따라 할인 쿠폰을 제공하다 보니 갈수록 두 금액의 차이가 커졌다. NH농협 측이 SK플래닛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수수료율을 더 올렸지만, 두 회사 모두 손을 들어 버렸다.

늘어나는 적자 원인은 설계 실패

소비자 입장에서는 “카드 가입하라고 회사가 제시한 혜택을 정당하게 다 쓰는 게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다. 실제로 카드 적자를 놓고 고객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카드사가 소비자 행동을 정밀하게 예측하지 못해 카드 부가서비스 설계에 실패한 결과일 뿐이다. SK플래닛 관계자는 21일 “카드 설계를 잘못했다. 5% 쿠폰을 제공할 때 고객들이 실제 이를 얼마나 쓸 것인가를 예측했던 비율이 완전히 어긋났다”고 밝혔다. 애초에 양사는 SK플래닛이 보유한 연령별, 성별, 직업별 소비 성향 빅데이터와 NH농협 측이 파악한 농협 고객의 소비 성향 정보를 활용해 모바일 쿠폰 다운로드율과 사용률을 예측했다. NH농협 측은 고객 다수가 농어촌 지역 거주자라 모바일 쿠폰 활용도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10명 중에 2, 3명은 쿠폰을 안 쓸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실제로는 발행된 쿠폰의 95% 이상이 사용됐고, 이것이 카드 발급이 6개월 만에 중단된 원인이었다.

SK플래닛은 당초 발행하기로 약속한 쿠폰의 항목ㆍ비율보다 NH농협이 더 많은 쿠폰을 요청해 시정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올해 1월 쿠폰 발행을 중단했고, NH농협 측은 5월 서울중앙지법에 제휴계약 해지 무효 가처분 신청을 냈다. NH농협 관계자는 “해외 수수료 항목에 있어 두 회사가 의견 차이가 있어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자는 뜻이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NH농협의 손을 들어줬고, 시럽 쿠폰 발행은 가까스로 재개됐다.

카드사 상대로 소송하는 소비자들

하나카드 크로스마일카드는 포인트와 항공사 마일리지 전환 비율이 좋아서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카드사의 적자 폭은 늘어가고 있고, 카드사는 부가서비스 혜택을 줄이는 조치를 되풀이 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나카드 크로스마일카드는 포인트와 항공사 마일리지 전환 비율이 좋아서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카드사의 적자 폭은 늘어가고 있고, 카드사는 부가서비스 혜택을 줄이는 조치를 되풀이 하고 있고, 소비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카드사들을 상대로 고객들이 법적 소송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하나카드는 현재 크로스마일SE 카드 고객 11명과 법정 다툼 중이다. 쟁점은 2013년 9월 하나카드(당시 외환은행)가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 혜택을 1,500원당 2마일에서 1.8마일로 줄이면서 고객들에게 제대로 알렸는지 여부다.

하나카드 관계자는 “2009년 만들어진 여신전문금융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제휴사 사정이나 적자 등 경영상 이유로 기존 부가서비스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울 경우 6개월 전에 홈페이지, 대금청구서, 우편, 이메일 중 2가지 방식으로 알리면 바꿀 수 있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입 당시 약관에도 부가서비스는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구두로 설명하고 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소송을 진행 중인 황선기 변호사는 “약관의 상위 개념인 여신전문금융법과 시행령에는 사업자가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않고 혜택을 축소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며 “항공사 마일리지는 카드를 고를 때 고객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가서비스이기 때문에 가입할 때 확실하게 알렸어야 하는데도 가입시키고 나서 뒤늦게 바꿀 때가 돼서야 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황 변호사도 2012년 다른 신용카드를 해지하고 해당 카드에 가입했다가 두 달 만에 마일리지 혜택 축소를 통보받았다고 한다. 그는 “카드 가입 두 달 뒤에 혜택을 줄인 것을 보면 카드 가입을 홍보할 때 이미 회사 내부의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객들이 카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2월 대법원은 고객에게 설명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부가서비스 혜택을 일방적으로 축소했다는 이유로 고객 108명이 한국씨티은행(아시아나클럽 마스터카드)을 상대로 낸 마일리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해당 상품의 마일리지 적립 기준은 단순한 부수적 서비스가 아니라 계약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며 “가입 당시 마일리지 적립 기준이 변경될 수 있다는 약관에 서명을 받은 것만으로는 설명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하나카드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엇갈리고 있다. 하나카드 측이 마일리지 축소라는 가장 중요한 약관에 대해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고객 손을 들어준 판결이 있는 반면 회사 측 손을 들어준 판결도 나왔다. 현재 4건이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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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피커를 우군으로 섬겨야 한다”

그동안 기업들은 체리피커를 얌체고객이라 여겼다. 그러나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체리피커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갖가지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은 체리피커가 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시대죠. 과거에는 케이크 위에 놓인 체리만 쏙 빼 먹는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이제는 기업들이 체리로 케이크를 만들어 모든 고객이 먹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우군으로 만들고 신뢰를 얻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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