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위험인물 모호해 대상 넓어져
정부 정책 비판하던 대학생들
집회 참여ㆍ온라인 의견 개진 위축
취업 불이익 등 우려 자기검열도
“반정부 대자보 썼던 나는 대체 어쩌라는 거냐. 대자보 적어서 온라인 상에 게재한 사람들 리스트도 확보하고 어떻게든 불이익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시청 앞 광장에서 집회하는 이들을 두고 복면 쓴 테러리스트라 규정했는데 이제 관련 단체 및 친분 있는 사람들까지 줄줄이 사찰ㆍ검열하게 되는 것 아니냐.”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이하 테러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날인 3일 서울대 학생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테러방지법 부작용을 우려하는 익명 게시글이 100건 이상 올라왔다. 오프라인 대자보나 온라인 의견 표출은 물론 집회 참여 등이 테러방지법 통과로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대학가를 엄습하고 있다.
온라인에 익숙한 대학생들은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조차 표현의 자유나 의견 표출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테러방지법 통과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학내 중앙도서관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는 연세대 학생 정우민(22)씨는 “마치 40여년 전처럼 집회와 시위까지 다 틀어막을 시대로까지 회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온라인에 익숙한 현재 대학생 세대는 온라인에서 의견 개진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금도 자신의 SNS에 정치적 의견을 쓰면 주변에서 ‘나중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걱정하는 얘기를 하는데 테러방지법으로 인해 스스로 ‘내가 이 글을 올려도 되나?’, ‘이 글 올리면 불이익 받는 거 아닌가?’하는 고민에 부딪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학생은 경상대 게시판에 “만약 정부의 법안에 반대하고 이를 주장하는 시위를 하거나 대자보를 붙이면 국정원이 나를 선동꾼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을 감시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테러 위험 인물’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도 대학생들이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시민들을 ‘복면 쓴 테러리스트’로 정의하면서 집회ㆍ시위에 참가하는 대학생들마저도 테러 위험 인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걱정으로 이어진다. 또 대학가 취업난과 맞물려 반정부 의견 표출 시 리스트에 올라 취업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들도 나왔다.
특히 정부가 실제로 개개인을 감시하는지 여부보다 감시 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정부의 반값등록금 홍보 등에 대해 SNS를 통해 비판적인 글들을 올려왔던 대학생 문모(25)씨는 “정부 비판 글을 쓰면 테러방지법 얘기가 나오기도 전부터 ‘판사님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작성자가 사라진 게시글입니다’와 같은 글들이 농담처럼 올라왔었다”면서 “이런 농담이 테러방지법 통과로 정말 현실이 돼서 글의 게시 여부를 고민하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진상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은 정부를 비판했다는 리스트에 올라 취직에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로도 감시 기능과 위축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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