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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북한, 영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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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북한, 영화, 상상

입력
2018.06.11 19: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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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신 없이 변하는 한반도 정세는 사회 모든 분야에 놀라운 상상력과 가능성을 제공했다. 반세기 이상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얽매었던 전쟁의 역사는 드디어 끝날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며, 평양냉면을 직접 평양에서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폐쇄됐던 개성공단과 중단됐던 금강산관광은 단지 재개되는 것을 넘어 ‘플러스 알파’가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 천연가스관, 북극 항로, 유라시아 철도···. SF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갑자기 현실이 됐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남한의 영화에서 북한은 금기어였다. 반공이 국시였고 국가보안법이 헌법 위에 있던 시절, 국책 영화가 아니면 충무로는 북한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쉬리’(1999, 강제규)나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박찬욱)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 영화에서 ‘북한’은 난감한 대상이었고, 이후에도 액션이나 스릴러의 소재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영화 속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서 북한과 만날 여지가 생겼으며, 영화계에선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일단 9월에 있을 평양영화축전에 한국의 영화인들이 참석하는 문제가 오가는 모양이다. 1987년에 시작돼 2~3년마다 열렸던 평양영화축전은 북한 영화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한 행사지만 정작 남한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올해로 16회를 맞이하는데, 지금 분위기라면 영화인들의 남북 상봉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듯하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축전에서 남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 올해 당장은 힘들겠지만, 지속적 교류가 이뤄진다면 조만간 성사될 수 있는 일이다. 2000년 6ㆍ15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한 영화 ‘불가사리’(1985)가 남한에서 개봉된 전례도 있다. 어쩌면 관건은, 북한에서 상영할 만한 적절한 남한 영화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한의 수많은 영화제들도 북한 영화나 영화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할 듯하다. 2000년 이후 몇몇 영화제들이 북한 영화를 상영하긴 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진 못했다. 이번엔 좀 더 적극적 차원에서 결합할 듯하며, 전 세계 영화인들이 모이는 영화제는 북한 입장에서도 좋은 문화 외교의 장이 될 것이다. 적십자회담을 통한 교류도 희망해본다. 분단 당시 적잖은 영화인들이 월북을 했다.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만, 혹시 생존한 분들이 있고 남한에도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합작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과거 ‘간 큰 가족’(2005, 조명남)이 북한에서 일부 촬영을 했고 ‘황진이’(2007, 장윤현)가 홍석중 작가와 저작권 계약을 맺은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남북 합작은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최근 ‘숙제’라는 영화가 합작을 추진중. 특히 로케이션으로서 북한의 자연은 매력적이며,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사극도 가능하다. 북한 영화산업으로서도 자신들의 인프라를 활용해 현재의 침체 상황을 약간이나마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남북 영화 교류의 최종 단계는 김정일 라이브러리가 될 것 같다. 영화 마니아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긴 세월 동안 전 세계에서 1만5,000 편 정도의 영화를 수집해 거대한 라이브러리를 구축했다고 한다. 여기엔 남한 영화도 있으며, 그 중엔 유실된 작품이 있을 가능성이 꽤 높다. 김기영 감독의 초기작, 유현목 감독의 ‘잉여인간’(1964),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흑맥’(1965)이나 전설의 ‘만추’(1966)를 만날 수 있다면? 이런 가슴 설레는 공상이 현실화된다면, 우린 한국영화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며, 그러면서 남북한을 모두 아우르는 영화사 서술 역시 시작될 것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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