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0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작성한 504건의 문건을 국정상황실에서 발견했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지난 14일 민정수석실, 17일 정무수석실에서 각각 발견된 문건을 공개한 데 이어 세 번째다. 공개된 문건의 내용은 하나같이 충격적이다. 청와대가 삼성 경영권 승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세월호 유족 탄압 등에 개입한 정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보수논객 육성과 보수단체 재정지원 방안 등 특정 이념 확산을 주도한 내용도 있다.
이들 문건에 국정농단의 실상을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증거자료들이 상당 부분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통령이 특검과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에 기를 쓰고 반대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검찰은 이들 문건이 누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작성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단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의 증거보강 차원이 아니라 정권의 권력 남용과 헌정 유린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흐지부지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공개한 문건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에 해당한다며 위법성을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은 생산 당시 개별적으로 보존기간을 정해야 하는데 문건에는 이런 흔적이 없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지정기록물 목록조차 비공개로 봉인해 놓아 이를 확인할 방법조차 없다. 공개된 자료 대부분이 자필 메모로 생산이 완료되지 않은 데다 문건 형태의 경우 제목과 소제목 정도를 공개한 것이라 누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논란의 초점을 내용의 심각성보다는 문건 공개의 위법성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려는 의도로 비치기 십상이다.
설혹 야당 주장대로 대통령 기록물이 맞다 해도 국가기록원으로 넘기지 않고 이렇게 부실하게 방치한 책임은 면할 길이 없다. 이곳 저곳 캐비닛마다 문건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도 여실하다.
청와대는 당초 국가안보실에서 발견된 자료 등에 대한 분석 작업 후 4차 공개를 예고했으나 방침을 바꿔 더 이상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가안보 관련 내용이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정치적 의도성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건 내용보다는 공개의 적절성에 관심이 과도하게 쏠린 상황에서 추가 공개 자제 결정은 바람직하다. 이런 소모적 논쟁을 막기 위해선 차제에 청와대 자료의 인수인계 시스템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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