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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외교의 품격

입력
2017.06.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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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한 연상시키는 日 외교관 책 유감

외교는 상대국에 대한 균형감 중요

한미 정상회담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화제가 되었던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의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출간을 처음 언론 보도로 알았을 때 고개가 갸우뚱했다. 40년 외교관 생활 중 12년을 보낸 주재국을 향해 설마 대사까지 지낸 사람이 혐한 서적을 연상시키는 선정적 제목으로 비난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 중에는 이 책이 양극화, 취업난, 극심한 경쟁 체제 등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설명한 곳도 있었다. 그래서 좀 너그러운 기분으로 한국인들이 “헬조선” 이야기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서로 붙인 제목이 아닐까 생각했다.

최근 그 책을 읽고 이런 짐작이 빗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 사회의 당면 과제를 언급한 대목이 적지 않지만(제목의 문장이 본문에 등장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거기에 무게중심을 둔 책은 아니었다. 책은 문재인 새 정부를 향한 악의에 가까운 비난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문재인을 ‘좌익친북’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험담을 거리끼지 않았다. 한 번 만나보고 문재인은 일본에 대해선 역사와 영토 문제밖에 관심이 없다고 믿어 버린다. 나아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한국인이 이성적이지 않다거나, 과감하게도 전 대통령을 파면한 헌법재판소의 결정마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가 왜 증오심마저 느껴질 정도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는지, 해외에서도 역동적인 민주주의로 평가받은 ‘촛불집회’를 폄하하는지 알 수 없다. 결과물만 놓고 보면 그가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방식은 자유한국당 내 소위 ‘친박’이 공유하는 시각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정치는 최근 20년 사이 보수와 진보가 교대로 정권을 잡는, 눈앞에선 격렬할지 몰라도 넓게 보면 나름 안정적인 정치 지형이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말이 능숙한 전후 첫 주한 일본대사의 한국관은 균형감을 상실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 여러 번 등장하는 표현을 빌리면 그가 한국 사회를 제대로 ‘부감(俯瞰)’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표현하느냐는 그의 자유다. 하지만 적어도 얼마 전까지 외교관을 지낸 그가 책을 통해 한국인을 재단하고 한국 사법기관의 판단에 문제제기까지 할 때는 그 판단력이 얼마나 균형 잡힌 것인지 나아가 외교관의 품격에 어울리는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어야 하지 않을까.

하기야 지정학적으로 끼인 신세여서 외교 고민이 중첩된 나라에서 남의 나라 전직 외교관의 품격까지 시비할 여유가 없긴 하다. 안타깝다면 우리 처지가 더 안타깝다. 한국 외교는 정치ㆍ경제 득실을 따지기에 바빴지 품격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방미 길에 올랐다. 새 정부 출범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은 최대 외교 이벤트다. 그래서 회담 한참 전부터 이런저런 우려와 훈수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사드 배치의 절차를 중시하는 새 정부의 정책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그런저런 문제로 동맹 관계에 금이나 가게 하지 않을까 걱정인 듯하다. 정반대로 회담에서 미국 비위에 맞춰 주는 말이라도 한마디 하면 사대(事大)라고 쏘아붙이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하든 욕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조언 중에는 “신뢰의 토대를 만들어라” “민감한 현안은 우회해라” “미국 대통령 가르치려 들지 마라” 등 현실적으로 도움 될 만한 것들이 많다. 거기에 한 가지 더 보탠다면 동맹 유지도 좋고 대등한 관계 설정도 좋지만 외교에서 균형 감각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동맹을 생각해 굽실거릴 필요도 없고 당당하게 만난다고 허세 부릴 이유도 없다. 그렇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현안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고, 자연스레 외교의 품격도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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