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는 15년 이상 논의, 노사정 임금 동결 등 합의 성공
기획재정부는 ‘정규직 과보호’의 대표 사례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꼽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제조업 분야 1년 차 직장인 임금과 20~30년차 직장인 임금이 2.8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고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임금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런 격차는 스웨덴(1.1배)이나 네덜란드(1.3배) 등에 비해 2배 이상 크고, 일본(2.5배) 독일(1.9배)에 비해서도 크다.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의 정년을 늘리는 것이 부담스럽고, 장기 근속자를 가능하면 해고하고 싶어 한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정년(약 57세)보다 이른 53세 정도에 타의에 의해 직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고령화도 기업 부담을 키운다. 2010년 기준으로 한국 임금근로자 평균 연령은 40.6세로 지난 25년간 7.1세 높아졌다. 임금근로자 중 24세 이하의 비중은 25년 전에 비해 16.4%포인트 줄어든 반면 50~64세 근로자는 10.4%포인트 늘었다. 생산성은 떨어지는 데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때문에 인건비는 늘어나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노인 빈곤과 비정규직 양산의 원인이 여기 있다는 것이 정부의 견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2010년 기준)은 현재 47.1%로 OECD 평균(12.8%)의 4배에 달하는 독보적인 1위다. 비정규직은 이미 300만명을 넘어 전체 일자리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유럽 국가들은 이 같은 경직된 임금 체계를 이미 해체했다. 독일은 경제 성장 둔화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던 2000년대 초반 ‘하르츠 개혁’을 단행,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내고 실업자 수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 한국 못지 않게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던 네덜란드도 1980년대 중반부터 15년에 걸쳐 임금 동결 및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일자리 창출 등을 골자로 하는 바세나르 협약 및 신 경로(New course)협약 등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한국도 변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재부 생각처럼 일이 풀릴 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지난 3월 구체적인 업종별 임금체계 개편 모델을 발표한 바 있지만 노동계에서 중ㆍ장년층을 중심으로 “낮은 초임을 감수했는데, 한창 돈이 많이 드는 지금 나이에 봉급을 낮추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해 거의 수용되지 않았다. 정책 자체의 정교함뿐 아니라 노사 관계가 극도로 민감한 현 상황에서는 그에 못지 고도의 정치력과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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