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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창조과학과 청와대의 반지성

입력
2017.08.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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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천명한 ‘5대 비리 인사배제 원칙’을 깨뜨리고 “국민의 양해”를 구할 때만 해도, 인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활동한 전력에 대해 청와대가 “종교는 검증대상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은 씁쓸함을 넘어선다. 이 해명으로 하여 창조과학은 종교적 신념의 영역에 포함돼 버렸고, 청와대는 위험한 무지의 수준을 드러내 버렸다.

창조과학회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시각에서 성경에 쓰인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하는 단체다. 구약성서에 기록된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가 실존했고, 창조론에 입각해 공룡 시대 인간이 존재했음을 보이기 위한 지질ㆍ화석학적 증거를 찾는 활동을 하고, 그래서 과학이라는 이름을 내건다. 당연하게도, 약 40억년 전 원시 지구의 유기물에서 생명체가 기원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거쳐 다양한 생물종이 탄생했다는 과학계의 학설은 부정의 대상이다. 그 연장선에서 교과서에 창조론을 포함시키고 진화론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8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있었다. 창조과학이 싹튼 나라인 미국에서도 공립학교 교과서에 지적설계론(창조론)을 기술해 정규교육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수십 년간 지속된 끝에 결국 2005년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즉 창조과학은 존중돼야 할 종교나 과학이 아닌, 전형적인 비과학이자 반지성인 것이다.

박성진 장관 후보자가 중소벤처부 장관으로서 적격한지 여부는 물론 따져봐야 한다. 지금까지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로서 문제 없이 연구와 교육을 해왔으니 장관으로서도 개인적 신념과 선을 긋고 업무 수행이 가능할 것이란 시각이 있을지 모른다. 반대로, 그가 기계공학과 교수였으니 망정이지 중소벤처부 장관으로서 가령 바이오벤처 육성ㆍ지원을 결정할 때 종교적 신념이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크다. 그러므로 “검증 대상이 아니다”라는 청와대의 해명은 틀렸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에 대해 과학기술인들이 그토록 반발한 본질적 이유도, 참여정부 과학기술보좌관 시절 황우석 박사와의 친분과 줄기세포 연구 육성의 신념이 국가 연구비 지원을 왜곡하고 논문의 진위 검증을 어렵게 하는 데에 일조했음을 생생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신앙의 자유라며 검증을 유야무야 넘길 경우 그 위험성은 더욱 크다. 사이비 종교단체들이 신도의 재산을 갈취하고 범죄행각을 일삼는데도 종교의 영역이라며 초법적 자유권을 주장한다면 이를 허용해야 할까. 극우 군국주의자나 지역차별주의자들이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며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를 높인다면 어찌할 건가. 창조과학이 이처럼 심각하고 직접적인 해악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해도, 반지성과 비합리의 물결은 나와 다른 생각을 배척하고 토론과 성찰을 통한 진보를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위험한 일이다.

문제는 종교가 아니다. 지성과 합리성의 문제다. 한 때 과학과 불화했던 가톨릭은 과거 이단으로 간주했던 지동설과 진화론을 인정하고 과학적 진리와 동반해 나아감으로써 번성하고 있다. 과학적 발견에서 신성을 경험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아주 약간의 불균형을 이루지 않았다면 이 우주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됐을 때 내가 느꼈던 짜릿한 전율과 고양감은 아마도 종교적 희열에 가까울 것이다.

공교롭게도 과학 관련 공직자 인사가 잇따라 논란이 되면서 과학계에서는 ‘문재인 정부는 과학에 아예 관심이 없나 보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웬만한 관심만 있어도 괜찮은 인재 한 명쯤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코드를 맞추느라 너무 좁은 인재 풀 안에서만 뒤졌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그저 ‘문제가 안 될 것으로 생각했다’는 해명은 더 이상 안 나오길 바랄 뿐이다. 반지성의 수준이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김희원 기획취재부장 h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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