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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서점의 시대, 개성의 시대.

입력
2017.06.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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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 갔었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책은 집에서 조용히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처음 도서전에 찾아가 본 것은 사회 관계망 서비스에서 도서전의 열띤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운 포스터도 감각적이었고,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일단 나 같은 조용한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충분한 동기부여에 성공한 셈이다.

무심코 도서전 입구에 들어선 나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출판계가 불황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책을 전시한 공간에 들어서기 위해 길고 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사장 안에도 사람들은 인산인해였고, 그야말로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준비한 책이 모자란다는 푸념까지 들렸다.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가 맞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들뜬 마음으로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행사장 안은 내실 있게 짜인 축제의 장이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코너는 '서점의 시대'였다. 특색 있는 독립 서점들이 각자의 안목으로 고른 책을 전시하고 있었다. 시집, 고양이 관련 서적, 추리소설, 디자인, 여행, 카메라, 독립출판물 등등, 독립 서점은 그 공간을 꾸민 사람의 개성과 특색을 찾아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동 서적 코너에는 책이랑 같이 노는 아이들이 북적였고, 원서 전문 서점에는 싼값에 원서를 살 수 있었다. 예쁜 그림책만 파는 부스도 있었다. 대형 출판사들은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을 꾸미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책을 설명했으며, 중소 출판사는 관람객에게 특색 있는 스토리텔링을 했다. 중간중간 작가들이 사인회를 열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5분 내외로 읽을 수 있는 글귀가 나오는 기계에도 사람들은 줄을 서 있었고, 작가들이 일대일로 독자를 면담하고 도서를 처방하는 천막도 있었다. 해외 각지에서 참가한 코너에도 흥미로웠으며, 나는 평소에 읽고 싶었던 한국어로 번역된 코란까지 공짜로 얻을 수 있었다. 결국 가방에 책을 한가득 넣고서야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축제가 마무리되자 아쉬워했고, 관람객들 사이에서 "책을 읽고 싶다."라는 말이 종종 들렸다. 재미있는 놀이동산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이렇게 도서전엔 작년의 두 배가 넘는 20만 명이나 모였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임에도 도서전이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책에 대한 관심을 판매량만으로 재단할 수 없음을 뜻했다.

디지털 시대에서 종이책의 판매는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은 디지털 기기로 늘 무엇인가를 읽기에, 오히려 글을 더 많이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개성을 쉽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분위기의 글이나 책을 분명한 관점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근래 '서점의 시대'가 열린 것도 우연이 아니다. 대형 서점은 베스트셀러를 위주로 진열할 수밖에 없지만, 독립 서점은 평소 접하기 힘든 책들로만 진열하고 공간을 꾸며 개성 있는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처럼 호흡이 짧은 글이 많이 소비되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시대에, 책이 특색 있고 매력적인 개성으로 다가간다면 사람들은 책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책이 활자를 넘어서 문화적인 아이콘으로 변신해야 하는 이유였다.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변신'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도서전은 공급자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또한 누군가 '독자의 귀환'이라고 칭할 만큼 이 노력을 받아들이고 들뜬 사람들도 보았고, 이는 출판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았다. 결국 사람들은 책과 글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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