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7.06 04:40
수정 : 2018.07.08 18:46

“최재천 교수님이 권해준 ‘도덕적 동물’ 읽고 진화심리학 공부 결심”

[무슨 책 읽어?] <9>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경희대 교수

등록 : 2018.07.06 04:40
수정 : 2018.07.08 18:46

리처드 도킨스ㆍ스티븐 핑커 등

대중적 글쓰는 과학자 책 좋아해

최 교수님은 인생 최대의 은인

“도덕을 생물학적으로 연구”

나의 관심분야 들으시곤

원서 ‘도덕적 동물’ 소개해줘

대니얼 리버먼이 쓴 진화의학 책

‘우리 몸 연대기’ 재미있게 읽는 중

'과학적 인간' 전중환 경희대 교수와 '문학적 인간' 김민정 시인이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책 이야기를 하면서 전 교수는 문학 책을 한권도 꼽지 않았다. 김주성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로 시작하는 가수 안치환의 노래이자 정호승 시인의 시가 퍼뜩 떠올랐다.불편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려웠다는 얘기가 아니라, 신기하고도 환기가 되었다는 소감이 훨씬 더 정확한 것일 테다. 너무도 다른 별에 사는 이들 둘이 우연히 땅으로 떨어져 서로의 길을 묻다 어디 평상 같은 데 걸터앉아 이런저런 자기 별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 헤어진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가 말을 해서 수첩에 받아 적은 책의 제목들, 내겐 처음 듣는 것일 제가 대부분이었다. 절망이었는데 그게 곧 희망 같았다. 모르는 책, 곧 알게 될 책, 안 산 책, 곧 살 책, 안 읽은 책, 곧 읽을 책, 그 책의 무궁무진함이야말로 사람을 참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니까.

김민정(이하 김) : 교수님의 저작 중에서 ‘본성이 답이다’, 요 책을 오늘 들고 나왔어요. 그런데 띠지 카피에 이렇게 쓰여 있네요. “한국인 최초의 진화심리학자가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에 던지는 새로운 해법!”

전중환(이하 전) : 아이고! 사실 ‘최초’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죠. 진화심리학이라는 분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인데요, 그 분야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저일 뿐이지 사실 별 의미는 없는 얘깁니다.

김 : ‘진화’도 ‘심리’도 ‘본성’도 제겐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거든요. 그런데 이 책이 아주 쉽게 잘잘 읽히는 거예요. 단문에 적절한 비유에 정확한 논거에 무엇보다 개념 정리가 아주 잘 된 노트 같았어요.

전 : 제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버스가 이런 조언을 해준 적이 있어요. 힘 있는 글쓰기는 간결한 것이다, 라고요. 정확하게 말하고자 하는 습관은 아마 최재천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서일 거라는 추측을 해보게 되는데요, 과학자이면서 대중적인 글쓰기에 능했던 리처드 도킨스이라든가 스티븐 핑커라든가 에드워드 윌슨 같은 이들의 책을 줄곧 읽어왔던 것도 제 근간이 되었지 않았나 싶어요.

김 : 이 책의 목차를 한참 들여다보았어요. 크게 ‘마음’ ‘폭력’ ‘협력’ ‘성(性)’의 문제라 4부로 나누셨는데요, 시에 있어서의 어떤 근원적인 주제들이 그와 맞닿아 있기도 하거든요. 물론 시는 이들 주제들을 몸으로 풀어 보여주지만요.

전 : 리처드 도킨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익숙함이라는 마취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게 과학의 덕목이라고요. 시와 과학은 세상을 낯설게 보기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그 출발점이 같잖아요. 물론 거리가 있는 것도 맞지만요, 어떤 오해랄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도 분명한 것 같아요. 그의 책 중에 ‘무지개를 풀며’란 게 있어요. 이 제목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가 자신의 시에서 뉴턴이 분광학을 통해 무지개를 조각조각 풀어헤치는 바람에 무지개의 시성이 사라져버렸다고 이야기를 한 데서 따온 건데요, 그러니까 무지개를 풀어헤친다는 작업 자체를 시인들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행위로 봤던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우리가 왜 이런 식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행동할까,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야말로 낯선 세계에 대한 분석적인 해석으로 어쩌면 우리의 지각 방식이라든가 객관적인 사고 자체를 훨씬 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풍부하게 넓혀줌으로써 오히려 무지개에 대한 아름다움을 배가 시킬 수가 있다는 거죠. 근데 저도 참 시에는 문외한이라…… 죄송합니다만. (긁적긁적)

김 : 아니에요. 저 역시도 과학이라고 하면 나 몰라 나 빵점이야 도리도리 그러는걸요.

전 : 과학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 이상이죠. 상상 그 이상의 세계를 밝혀주는 것, 그게 과학이죠. 공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대단히 힘들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내는 게 우리의 ‘마음’이란 거잖아요. 결국 우리 자신이 왜 이렇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밝혀낸 유일한 종이 인간이라는 걸 진화심리학이라는 과학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김 : 진화심리학자가 되기까지 이력을 보니…… 학부 전공은 생물학과네요. 저한테 생물은 고등학교 때 왜 깜지 아시죠, 새까맣게 용어 써가며 달달 외우던 그런 암기 과목이거든요.

전 : 저도 그랬죠.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거 시험에 나오니까 들입다 암기만 하니까 재미는 없고 이런 학문을 뭐 하러 전공하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죠. 게다가 우리나라 생물학과는 보통 분자생물학을 위주로 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공부가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에, 또 굳이 따져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인간의 마음이랄까 정신이랄까 뭐 이런 쪽에 관심이 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입문’은 읽고 대학에 갔으니까요.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 김주성기자

김 : 결국에는 그 막연함이 현실이 된 거잖아요.

전 :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도서관 처박혀서 콘라트 로렌츠의 ‘공격성에 관하여’라든지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 같은 책들 쭉 읽어나가면서 이쪽 공부를 하면 ‘인간’에 대해 좀더 알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3학년 때였는데 선배들이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이자 개미 연구자가 신임 교수로 온다는 거예요. 최재천 교수님이셨죠. 그때 처음으로 교수님께 진로랄까 제 학문적 고민을 토로했던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외국에는 생물학과 나와서 인류학과나 심리학과에 자리 잡고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인간에 대한 진화적인 접근을 했던 선도적인 학자들이 미시간에 많다, 해서 후에 제 지도 교수가 된 데이비드 버스 얘기도 들을 수 있었고요. 그때 반드시 이 학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김 : 최재천 교수님을 만난 건 정말이지 기막힌 타이밍이다 싶은데요.

전 : 제 인생 최대의 은인이시죠. 하루는 최재천 교수님이 저더러 뭘 하고 싶냐고 물으세요. 그래서 제가 도덕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고 싶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때 우리말로 번역되기 전이었던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원서를 소개해주셨어요. 그러고는 일단 진화의 기초를 쌓는 게 중요하니까 동물로 석사를 하고 유학을 가서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하셨죠. 석사는 교수님 지도 아래 개미 행동에 대한 연구로 받았어요.

김 : 개미요?

전 : 네, 왕벚나무 아래 있는 개미 군락을 삽이랑 곡괭이로 쌀 포대 자루에다가 미친 듯이 털어 넣고 한 군락을 샘플로 실험실에서 기르면서 관찰을 하거든요. 제가 연구한 건 일본 침개미인데요, 개미가 원래 벌에서 진화를 한 거거든요. 개미의 조상이 벌이에요.

김 : 개미의 진화에서 사람의 진화까지 줄곧 공부를 하고 계시잖아요. 진화심리학 …… 쉽지 않음을 알지만 쉽게 이해하고픈 마음입니다.

전 : 한마디로 인간의 마음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얘깁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결국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들어져 가는 거거든요. 복잡하고 정교한 마음이 왜 그런 진화의 과정을 겪게 되었나, 그 목적을 추론해나간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을 훨씬 더 넓힐 수가 있지요.

김 : 사실 마음이란 건 한도 끝도 없는 거잖아요.

전 : 우리 마음이 왜 이런 식으로 설계가 되었는지 이해를 한다는 건요, 복잡하고 정교한 생물학적인 형질을 만났을 때 우리가 그것의 진화적인 기능을 묻는 거거든요. 어떻게 다음 세대를 위한 복제본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는가, 그걸 아주 구체적으로 묻는 거죠. 마음이라고 해서 단순히 그냥 좋고 마냥 기분이 좋아서, 그렇게 말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거죠.

김 : 이 학문을 위해서는 정말이지 잡식성 학자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어려워요.

전 :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연결하는 학문이니까요, 인류학이라든지 심리학이라든지 경제학이라든지 생물학이라든지 뇌과학이라든지 뇌분비학이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학문들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허튼소리를 안 할 수가 있으니까 다양한 분야가 필요하기는 하죠. 그래서 책을 좀 읽는 편입니다.

김 : 독서 이력이 막 궁금해지는 참이었습니다만.

전 : 대학교 1학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봤어요. 물론 그땐 제대로 이해를 못 했죠. 3학년 때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된 뒤부터 최재천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로버트 라이트가 쓴 ‘도덕적 동물’이라든가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 같은 책들 읽어가면서 나도 진화심리학을 해야겠다, 결심을 굳혔죠. 스티븐 핑커가 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와 같은 과학대중서의 책들은 군대 있을 때 봤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김 : 혹시 어렸을 적에 읽은 책 가운데 지금도 내게 영향을 미친다 할 만큼 긴장을 주는 작품이 있으실까요. 과학자들 보면 그런 책들이 꼭 한 권씩은 있더라고요.

전 : 이런 질문들 왜 흔하게들 하잖아요. 그런데 스티븐 핑커는 이런 질문 하지 말라고 합니다.(웃음)

김 : 네? 왜요?

전 : 사람들이 어릴 적에 겪게 되는 어떤 일이란 게 있잖아요. 예컨대 어린이일 적에 제인 구달의 대중 강연을 보게 되었고, 감명을 받아 그때부터 영장류 학자가 되어야지 결심을 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매진하게 되었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곤 하는데요, 사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책이나 사람과의 만남으로 내 운명이 바뀌었다기보다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천성적으로 흥미나 관심을 갖고 있던 아이들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이라든지 리소스를 향해 알아서 먼저 간다는 거죠.

전중환 교수에게 '마음'을 묻고 있는 김민정 시인. 김주성기자

김 : 아 그렇구나. 저도 책으로 밥 벌어먹고 살 것을 미리 알았을까요. 어릴 때 책만 쥐어주면 야무지게 입으로 물어뜯기 바빴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책은 주로 외서를 보시나요? 제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 문학 분야보다 아무래도 과학 분야의 도서들이 해외에서 출간되어 국내에 번역까지의 시간이 더 걸리는 듯도 해서요.

전 : 네 비교적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주로 아마존을 이용하고요. 물론 서점에 자주 나가기도 하지요. 과학 코너와 심리학 코너에서 오래 머무릅니다. 참, 보려고 사둔 책 가운데 ‘Dinner with Darwin’이 있어요. ‘Food, Drink, and Evolution’라는 부제가 붙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인데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김 : 그렇긴 한데 문득 내가 다윈에 대해 아는 게 뭘까, 라는 막막함이 엄습합니다요. (웃음) 그리고 또 요즘 무슨 책을 읽으시는지요.

전 : 대니얼 리버먼이 쓴 진화 의학에 관한 도서 가운데 ‘우리 몸 연대기’라는 책이 있어요. 부제가 ‘유인원에서 도시인까지,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라고 붙어 있는데, 그렇죠, 과학 관련 도서들은 이렇게 알아먹기 쉬운 부제가 붙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웃음) 김명주 선생님의 번역이니 믿고 보셔도 좋을 듯해요. 아주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많이는 진도가 안 나갔는데 스티븐 핑커의 신작인 ‘Enlightenment Now’를 읽고 있어요.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번역할지 모르겠네요.

김 : 제목이 뭐라고요? 아 계몽, 잠시만요, 이 책 검색을 좀 해볼게요. 어라, 2018년 1월 1일에 출간된 거네요. 혹시 번역에 대한 욕심은 없으세요? 외서를 찾아보는 눈이 밝으시잖아요. 그때그때 번역도 부지런히 해주시면 읽는 우리들이 참 행복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전 : 에이 요즘 워낙에 훌륭하신 과학 전문 번역가분들이 많이 계신걸요. 게다가 제가 참 게으르기도 해서요. 번역서는 아니고 제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여러 학자들의 재미난 뒷얘기를 ‘과학동아’에 연재한 것이 있는데 그건 한번 묶어보려고 해요. 사이언스북스의 제 책 담당 편집자가 내도 괜찮을 거라고 강력 추천을 해서요. 그러면 전 툴툴거리면서도 또 끌려갑니다.

김 : 혹시 점 본 적 있으세요?

전 : 대학교 때 딱 한 번이요. 사람들이 왜 무속에 빠질까 하는 데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있어요. 말하자면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갖는가, 에 대한 관심이요. 초자연적인 신과 인간을 잇는 샤먼 같은 존재들 있잖아요. 시뻘건 장작더미 위를 걷는다든지 작두 위를 걷는다든지 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믿게 만드는 그들의 힘, 그런 데에는 관심이 있죠.

김 :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함께 사는 가족들의 마음은 좀 살필 줄 아시지 않을까요. 마음 박사인데요.

전 : 이렇게 심리학 일반에 대한 오해가 있다니까요. 심리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귀신같이 읽을 것 같기도 하다는 거예요. 물론 일반적으로 심리학자들이 인간 행동을 공부하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람의 마음을 좀더 이해를 할 텐데요, 그렇다고 해서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걸 알아채는, 그야말로 독심술이 있는 건 아닙니다.

김 : 그러니까 언제 ‘마음’의 행복감을 느끼시는 것 같은지요.

전 : 일단은 신선도가 기가 막힌 책이나 논문들을 접할 때죠 뭐. 제가 주로 이론적인 연구를 하는데 그 결과가 잘 나올 때 더 좋고요. 요즘 성 도덕에 관련해서 수학적인 모델링을 하려고 하는데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연구가 진행될 때의 재미, 설렘 같은 게 그 마음의 현재가 아닐까 하네요.

김민정 시인ㆍ난다출판사 대표

▦전중환은?

진화심리학은 진화의 원리를 인간의 마음에까지 확대 적용한, 1990년대 들어 구축되기 시작한 최신 학문이다. 전중환 경희대 교수는 진화심리학의 개척자 데이비드 버스 텍사스대 교수의 직계제자로 ‘오래된 연장통’을 비롯, 진화심리학을 소개하는 책들을 꾸준히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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