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31ㆍ아르헨티나)가 골대 11m 앞에 섰다. 아무리 두드려도 꿈쩍 않던 아이슬란드의 골문을 열어젖힐 절호의 기회였다. 1993년 코파 아메리카를 끝으로 25년 째 메이저 우승 갈증을 못 풀고 있는 팀을 위해서도, 월드컵 트로피 빼곤 다 가진 개인을 위해서도, 이번 득점은 절실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도움 닫기 다섯 걸음. 왼발로 감은 공은 골문 가운데 왼쪽으로 향했다. 페널티킥 분석 전문 매체 ‘페널티킥 스탯’에 따르면 이 지점은 메시가 시도한 모든 페널티킥 중 3번째로 최악인 위치였다. 메시는 고개를 떨궜다.
메시가 또 다시 페널티킥을 놓쳤다. 그는 16일(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D조 1차전 아이슬란드와 경기에서 팀이 1-1로 비기던 후반 17분 페널티킥 실축을 범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5위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초년생 아이슬란드에게 파상공세를 퍼붓고도 1-1로 비겨 승점 1점을 챙기는데 그쳤다. 이날 경기에서 메시는 침묵했다.
세계 최고의 골잡이 메시는 유독 페널티킥 앞에 서면 작아졌다. 그는 지난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에서 6차례 페널티킥을 시도해 3차례나 실패했다. 이날 실패까지 더 하면 최근 7경기에서 4번이나 놓쳐 성공률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요한 순간 페널티킥 실축으로 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칠레와 경기에서 승부차기 첫 번째 키커로 나섰지만 골대 바깥으로 날려 패했다. 아르헨티나는 1993년 이후 25년 째 메이저 우승이 없다.
앞서 같은 날 B조 경기에서 라이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ㆍ포르투갈)가 스페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과 비교돼 메시의 실축은 더욱 뼈아프다. 호날두는 전반 4분 만에 스스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오른쪽 구석을 강력하게 갈랐다. 그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게 방향을 읽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방향을 읽혔다 하더라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예리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메시는 정규 경기에서 통산 103번 페널티킥 기회를 얻어 76.7% 성공시켰다. 호날두는 104번 중 단 19번만 놓쳐 82.6% 성공률을 보였다. 최근 10년 간 발롱도르를 5차례씩 나눠가지며 세계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는 둘이지만, 페널티킥 만큼은 호날두가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날 페널티킥 앞에서 두 선수가 보인 태도도 이런 차이를 극명히 드러냈다. 호날두가 페널티킥을 차려고 준비하자 스페인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28)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호날두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데 헤아에게 윙크를 보내며 눈싸움을 걸었다. 데 헤아는 먼저 고개를 깔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반면 메시는 페널티킥 전 초조한 표정으로 땅을 쳐다봤다. 가쁜 숨을 몰아 쉬었고 긴장한 듯 코를 훔쳤다.
이번 대회는 메시와 호날두의 대결로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로 활약하면서도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던 둘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대회에서 우승이 간절하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호날두는 패배 위기에 몰린 팀을 구해내는 프리킥을 터뜨렸다. 생애 51번째 해트트릭이었다. 반면 메시는 승리를 눈 앞에 두고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둘 모두 승점 1점씩 챙겼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호날두의 완승이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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