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운동협의회, 정문서 1인 시위
정부·청와대까지 나서도 묵묵부답
‘국회는 담뱃갑 경고그림(을) 속히 통과시켜라.’
손팻말을 든 대학생 신은형(22ㆍ사진)씨가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섰다. 1시간 남짓 1인 시위한 신씨는 “쉬는 시간 강의실 건물 앞과 카페 테라스에서 흡연하는 학생들이 많아 캠퍼스 안팎이 꽁초와 침으로 지저분하고 간접흡연 피해가 크다”면서 “경고그림을 넣어 흡연자들이 담배를 볼 때마다 움찔하도록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을 요구하는 1인 시위로 국회를 압박한 지 한 달이 됐지만 대표적 비가격 금연정책인 경고그림이 국회 문턱을 넘을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금연협의회는 지난달 2일 국회가 경고그림은 예산부수법안에 묶일 성격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에서 빼자 사흘 뒤인 5일부터 1인 시위를 진행중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도 경고그림 도입 불발에 ‘매우 아쉽다’며 강한 유감을 표한 바 있다.
담뱃값은 여야 합의로 10년 만에 80%나 올라 한 갑당 4,500원이 됐는데, 금연효과가 큰 경고그림에 대해 여야가 모르쇠로 해를 넘기자 청와대까지 나섰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달 2일 “경고그림 표시와 담배가격 물가연동제 적용 법안 등 14개 중점법안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임시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이달 12일까지 경고그림을 심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경고그림 단일 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복지위를 열 수는 없다. 그럴 만한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폭 올린 담뱃값으로 금연 효과를 보려면 비가격 정책도 병행해 실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성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비가격 금연정책 중 경고그림이 상대적으로 취약한데 호주만큼 강하게는 못하더라도 단계적으로 강화해야 가격정책 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세금 걷으려고 담뱃값 인상한 거 아니냐’는 의혹만 커질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경고그림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우선순위 과제”라고 강조했다. 조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담뱃값만 2,000원 올릴 경우 2012년 44.5%인 성인 남성 흡연율은 2020년 37.5%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담뱃갑 경고그림 등 비가격 정책이 동반되면 흡연율은 29.1%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금연운동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서홍관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42.5%인 성인 남성 흡연율을 2020년까지 29%(OECD 평균)로 낮추겠다는 정부 목표에 도달하려면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을 포함한 비가격 정책을 강력하게 써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재정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담뱃값이 500원 오른 뒤 성인남성흡연율은 7.5%포인트 줄어 2008년 40.4%로 최저를 기록했지만 2009년 41.4%, 2010년 42.6%, 2011년 44.5%로 다시 서서히 올랐다. 결국 가격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위해선 비가격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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