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송용창 기자

등록 : 2017.09.27 00:01

한반도 ‘우발 충돌’ 경고음 커진다

등록 : 2017.09.27 00:01

美 폭격기 다시 NLL 넘으면

北도 출격 대응사격 가능성

우발 사고로 인한 전쟁 우려까지

한편선 긴장 수위 조절 움직임도

지난 9월 18일 미 전략 폭격기 B-1B 랜서가 F-35B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미국과 북한간 ‘말의 전쟁’이 격화하면서 한반도 일대에서 우발적인 무력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이 전략폭격기 B-1B 랜서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최북단으로 출격시킨 데 대해 북한도 맞대응식 무력 시위에 나설 것으로 보여 자칫하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5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먼저 선전 포고를 했기 때문에 모든 자위권을 갖게 됐다고 또 다시 엄포를 놓았다. 리 외무상은 23일 이뤄진 랜서 출격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전략폭격기를 쏘아 떨굴 권리”를 언급해 랜서 출격에 대한 대응으로 자위권을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이 같은 자위권을 내세워 선제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지만, 미국의 공격적인 군사 압박에 대한 맞대응으로 다양한 형태의 무력 시위를 벌일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리 외무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험담을 쏟아 부었듯, 북한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보복 대응을 줄곧 취해왔기 때문이다.

우선 미 전투기가 다시 NLL을 넘어오면 국제 공역이라 하더라도 대응 사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간 NLL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북한으로선 NLL 침범을 문제 삼지 않는 대신 보복 대응을 위해 자위권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주고 받기(tit for tat)’ 식 보복이라면 북한도 전투기를 NLL을 넘어 남측 동해의 국제 공역으로 침투시킬 수 있다. 랜서의 NLL 침범을 빌미로 NLL 무력화를 주장하며 북한 함선이 서해 NLL을 침범하는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5월 서해 해안포 부대를 방문해 백령도ㆍ연평도 타격 계획을 검토했고 지난 달에는 점령훈련까지 한 점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리 외무상이 23일 유엔 연설에서 “전체 미국 땅이 로켓 방문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위협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괌, 하와이, 또는 미국 서부 해안 인근까지 날려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예상 가능한 카드다.

이 같은 미사일 도발이 미국 영토나 영해를 침범하지 않더라도 사전 예고 없이 발사될 경우 민간 항공기나 선박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리 외무상이 유엔 연설에서 “미국의 무고한 생명이 화를 입으면 트럼프 책임”이라고 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엄포용 포석으로 보이지만,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선 우발적 사고가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기 십상이다. 무력 시위가 공격 의도를 담은 군사 행동으로 오인돼 즉각적인 무력 대응을 초래할 수도 있다.

외교안보 전문가 대다수가 우려하는 것도 우발적 충돌과 사고로 인한 전쟁 시나리오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나토(NATO)군 총사령관이 이날자 LA 타임스 인터뷰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제외하면 역사상 핵전쟁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우려를 대변한다. 그는 재래식 전쟁 가능성이 50%, 핵전쟁 확률이 10%라고도 예상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리 외무상의 기자회견 직후 “불 같은 대화는 치명적인 오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치적 해법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당부했다고 유엔 대변인이 전했다.

다만 이 같은 긴장의 악순환 속에서 미북 양측이 수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의) 선전 포고 주장은 터무니 없다”며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인 비핵화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리핑 때마다 “군사옵션을 포함해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 있다”는 얘기를 빼놓지 않던 것과는 다소 달라진 뉘앙스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 보좌관도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전쟁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핵 문제를 푸는 정밀 공격은 없다”며 외과수술식 타격 가능성도 부인했다.

리 외무상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위권을 언급하면서도 위협 수위를 낮춘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뉴욕 방문 중에 그가 던진 위협이 ‘태평양 상 수소폭탄 실험(21일)’ ‘로켓 방문(23일)’ ‘전략폭격기를 쏘아 떨굴 권리(25일)’ 등으로 점차 수세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험담도 없이 상당히 정제된 용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하는 데다, 자신들의 정치적 위신을 지키기 위해 치킨 게임식 엄포에서 물러서지 않을 가능성이 큰 점이 여전히 우발적 충돌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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