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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부담 안 주고 잘 사는 게 효도”

입력
2017.05.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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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녀 10명 중 6명

“당연히 ‘취직’이죠.”

공무원 박모(29)씨는 23일 가장 기억에 남는 효도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느라 홀어머니께 늘 죄스러웠던 그는 지난해 공무원 시험 합격으로 그 동안의 불효를 말끔히 씻었다. 박씨는 “내 생계를 내가 책임질 수 있게 된 게 어머니께 한 최고의 효도”라고 말했다.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뜰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진 심청이의 효도는 말 그대로 옛 이야기가 됐다. 이제는 일자리를 구해 손 안 벌리고 사는 것, 부모에게 더 이상 부담을 안 주는 게 최상의 효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문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최근 전국 20대 남녀 530명을 대상으로 ‘부모와의 관계 및 효에 관한 20대 인식’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2%는 ‘내가 잘 사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강조했다. ‘효도는 내가 부담되지 않는 정도만 하면 된다’는 답변도 절반 이상(53.8%)을 차지했다.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부모님의 의견을 따를 필요는 없다’(37.2%)는 생각도 강했다. 부모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게 효라는 관념은 상당히 옅어진 셈이다.

이는 사회ㆍ경제적 형편 상 부모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2017년 한국 사회 20대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응답자 중 조금이라도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답한 20대가 65.7%나 됐다. 생활비 전액을 지원받는다는 20대가 30.9%, 절반 이상을 부모님이 부담한다는 응답도 20.6%에 달했다. 취업한 후에도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들조차 34.3%였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결혼을 한 뒤에도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다는 대답도 각각 37.5%, 17.7%를 기록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졸업 소요 기간은 5년 1개월이었다. 취업난으로 졸업을 연기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0대 실업률(12.5%)은 사상 최고치였다. 경기 침체와 취업난으로 20대의 사회 진출 시기가 지체되며 부모에게 기대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취업 후에도 내 집 마련, 결혼, 육아 등 산적한 과제들로 효를 실천할 수 있는 여력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고 20대는 토로하고 있다.

현실의 팍팍함 때문에 20대는 본인의 효도 점수를 100점 만점에 60.6점으로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거꾸로 이는 여건만 되면 효를 다 하고 싶은 20대의 효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직장인 신모(27)씨는 “최근 어머니가 팔에 화상을 입었는데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병원에 같이 갈 시간을 낼 수 없었다”며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 아직도 아이처럼 바라기만 할 때가 많다”고 자책했다.

효 인식의 변화에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녀들이 점점 개인주의적, 현실적으로 변해가는 것은 비단 국내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며 “부모-자녀 간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효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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