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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정국가라면서… 커피숍ㆍ거리에서도 약물 거래

입력
2018.01.17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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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마약사범만 따져도

인구 10만명당 30명 달해

공식통계에 안 잡힌 암수범죄

검찰선 “20~30배 이른다”

#2

SNS 통한 비대면 거래 늘어

명문대 재학생ㆍ공무원ㆍ주부 등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윤모(28)씨는 2016년 7월 대마 및 LSD, MDMA(일명 엑스터시) 등을 구입하고 대마를 판매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윤씨는 국내 명문대 재학 중에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2009년부터 일본의 한 대학에서 공부하던 모범생이었다. 그는 다른 마약류 사범들과 마찬가지로 구글 네이버 등 일반 검색엔진이 아닌 특정 브라우저로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 ‘딥 웹(Deep Web)’ 사이트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으로 마약류를 사고 판 것으로 조사됐다. 초범이지만 전과자나 다름 없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현직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 일반 회사원이나 가정주부가 마약류 투약이나 판매 혐의로 붙잡히는 일은 이제 기삿거리도 안 될 만큼 허다하다. 조직폭력배의 범죄, 해외 유학생 등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마약류는 이미 우리 이웃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는 얘기다.

마약류 거래 장소도 우리 일상 공간으로 깊숙이 침투하면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젊은이와 외국인이 모이는 클럽이 마약류 거래의 온상이라는 건 옛말이다. 자영업자 이모(37)씨는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엑스터시 케타민 코카인 등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을 수십 차례에 걸쳐 투약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보호관찰 2년을 선고 받았다. 이씨는 서울과 태국의 클럽, 유흥주점 내 화장실이나 룸 등 폐쇄된 곳뿐 아니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커피숍이나 주점 화장실 등에서도 공공연히 마약류를 거래ㆍ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일본 야쿠자와 대만 조직폭력배가 대낮에 서울지하철 2호선 역삼역 인근 거리에서 필로폰 8.6㎏을 거래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대검찰청 자료(2016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16년 전체 마약류 사범은 1만4,214명으로 전년보다 19.3% 늘었다. 1999년 처음 1만명을 돌파한 뒤 잠시 주춤하던 마약류 사범 숫자는 2015년 다시 1만명 선을 넘으며 증가 추세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가’라는 타이틀을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허상에 불과하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가가 아니다.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이면 청정국가로 인정하는 통상의 국제 기준을 따른다고 하지만, 2016년 통계를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약 30명이다. 저 국제 기준이라는 것도 애매모호하다.

게다가 수사기관에 적발된 마약류 사범들만 수치로 드러났을 뿐, 생활권 내로 마약류가 파고든 실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마약류를 투약하지만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암수범죄(暗數犯罪)가 20~30배에 이른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약류를 구매할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접촉하지 않고 ‘비대면(非對面)’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위험성에 비해 가격도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필로폰은 1회 투약분(0.03g)이 10만원, 대마초 1회분(0.5g)에 1만원, 엑스터시 1정에 3만~4만원 선이다. ‘단골’이 되면 가격은 더 낮아질 수 있고,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특별취재팀이 만난 마약류 경험자는 “잘 아는 판매책에게 필로폰 1회분을 5,000~1만원에 살 수 있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중독성이 강한 약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도 문제다. 다이어트약과 학생들이 애용하는 에너지드링크 등 각성제음료가 대표적이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우리나라는 마약류뿐 아니라 중독성 강한 약물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들의 감수성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마약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지만 마약을 한 번만 투약한 사람은 없다고 하듯 약물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

1 도돌이표: 절망과 참회의 악순환

2 상상 초월: 청정하지 않은 대한민국

3 좀 이상해: 개운치 않은 수사와 재판

4 마약 양성소: 전문가 키우는 교정시설

5 보름 합숙: 쉽지 않은 재활의 길

6 갈 곳이 없다: 취업과 치료 거부하는 사회

7 일본 가 보니: 민간이 주도하는 재활센터

8 재사회화: 극복하고 있어요 응원해 주세요

특별취재팀=강철원ㆍ안아람ㆍ손현성ㆍ김현빈ㆍ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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