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수풀 해녀학교의 살림살이를 맡은 최상훈 사무장(37)은 입문반 8기 졸업생이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제주 바다에 반해 2014년 가족과 보금자리를 옮겼다. 2015년 해녀학교에 입학할 땐 해남(海男)이 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주에선 물질은 여자의 일이라 생각하는 탓에 해남은 의료 지원과 잠수복 지원 등 여러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아쉽지만 잠시 꿈을 미뤘다.
새로운 삶을 찾아, 혹은 색다른 경험을 하러 해녀학교의 문을 두드린 이들의 마음을 최 사무장은 누구보다 잘 안다. 처음 물질을 배우는 어려움도, 서서히 바다에 익숙해지면서 느끼는 희열도, 첫 수확의 기쁨도, 그가 모두 경험한 것들이다. 그래서 수강생들에게 선배로서 ‘꿀팁’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애기군(물질이 제일 서툰 수강생 무리)을 가르치기도 한다.
최 사무장은 가까이에서 해녀의 삶을 지켜보며 제주 해녀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4,000명 가량 남아 있는 해녀 대부분이 60~70대 고령층”이라며 “해녀를 양성하지 않으면 세계적 유산인 해녀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냐”고 말했다. 벌써 내년에 만날 11기 수강생을 기다리며 귀덕리 앞바다를 지키는 최 사무장에게 해녀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해녀학교가 벌써 개교 10년째를 맞았다.
“제주에선 해녀를 소위 ‘노가다’(막노동)보다 못한 직업으로 여겼다고 한다. ‘당신 딸 해녀 시켜라’라는 말이 아주 심한 욕이었다. 당연히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제대로 운영이 되겠냐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보여 놀랐다. 사진가와 디자이너, 시나리오 작가 등 문화 콘텐츠 업종 사람들이 해녀 관련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수강하기도 하고, 진짜로 먹고 살기 어려워 물질을 배우려는 사람도 있다. 젊은층이 의외로 해녀를 전문직으로 생각하고 지원하는 게 흥미로웠다. 벌써 10기를 졸업시키니 해녀 선생님들과 귀덕리 주민들이 뿌듯해한다.”
-해녀학교는 무엇을 가르치나.
“얼마 전까지도 커리큘럼이 체계적이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외부 강사를 적극 초빙하고 있다. 흔히 무호흡 다이빙이라고도 하는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바다에 들어가는 레저 스포츠인데 해녀들의 잠수와 비슷한 점이 많아 프로그램을 따왔다. 응급처지법과 심폐소생술 등을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어 요즘엔 제주 주민도 해녀가 되려면 먼저 해녀학교를 졸업하라고 한다. 하지만 물속 어디쯤에 소라가 있는지, 성게는 어떻게 잡는 건지 같은 경험이 뒷받침돼야 하는 교육은 마을 해녀들이 담당한다.”
-해녀가 되는 방법은.
“해녀 양성이 해녀학교의 설립 목적이지만 졸업과 동시에 곧바로 해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마을에서든 2,3년 이상 살면서 마을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 제주에선 어촌계별로 마을 공동 어장을 관리한다. 어촌계에 먼저 가입하고 다시 해녀회에도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수협에 해녀로 등록하면 해녀증이 나온다. 이 자격증은 대물림 된다. 관련 규정이 마을 어촌계마다 다르다. 어떤 마을에선 딸에겐 줘도 며느리에겐 안 주고, 다른 마을에선 딸이 시집 가면 남의 집 사람이라며 안 물려준다. 제각각이다. 해녀학교를 졸업하고 실제 해녀로 활동하는 사람은 기수별로 1~3명 정도다.”
-포기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물질이 생각보다 어려워 중도에 그만두기도 하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어촌계 가입비 때문에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의외로 복잡한 절차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제주 지역 문화부터 이해해야 한다. 육지 사람은 전입 신고를 하면 그 마을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주 마을은 씨족 집단으로 구성된다.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사이에 동화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해녀를 길러내려는 이유는.
“해녀 양성을 반대하는 해녀들도 있다. 바다 자원은 한정적인데 해녀가 늘면 각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줄어든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해녀들이 아프거나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나. 보존이 시급하다.”
-제주에 정착한 이유는.
“도시 삶에 지쳤다.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줘야 할까 고민했다. 건강한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고 싶었다. 바다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제주 귀촌을 결정했다. 제주에 오면 해산물을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웬걸. 육지에서보다 고기를 더 자주 많이 먹는다(웃음).”
-해녀학교에 지원하려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해녀와 함께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귀중한 경험이다. 이곳에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이들도 있다. 졸업생들은 토요일마다 해녀학교에 가야 할 것 같은 후유증을 겪는다. 우리는 마약 같다는 의미에서 ‘물뽕’이라고 부른다. 죽을 때까지 해녀학교의 추억이 그리울 것이다. 인생의 한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제주=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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