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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새해 단상

입력
2016.01.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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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란 모든 일을 경황 없이 겪고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이즈음은 그 정도가 유별난 것 같다. 세상일에 촉각을 세우는 직업이라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국회는 여야 대립으로 꽉 막힌 상태에서 몇 차례 ‘민중총궐기’ 시위에, 해가 바뀌기 직전 ‘위안부’ 한일 합의까지 급작스럽게 발표되었다. 터져 나온 합의 반대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데 이번에는 북한의 ‘수소탄’ 실험 주장까지 더해졌다.

위안부 문제와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갈등의 구도가 선명한 문제였다. ‘위안부’의 경우 요점만 말한다면 법적인 수준의 배상을 요구하는 위안부 할머니 대변 단체와 법적인 배상 없이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일본 정부의 그간 대립이 이번 합의에서도 변함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북핵의 경우 핵개발 저지를 두고 국제사회가 대화냐 제재냐 하며 20년 넘게 우왕좌왕했고, 그 사이 변한 건 북한의 핵실험 횟수뿐이다. 어느 쪽이나 해답은 간단해 보이는데 그 답을 현실에 적용할 때 온갖 하위 변수들이 발동해 결국 배는 평안하게 목적지로 가닿지 못하는 형국이랄까.

어수선해진 기분을 다잡아 볼 요량으로 집어 든 책이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던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16세기 프랑스 사상가이자 정치인 몽테뉴의 저작 ‘에세’(‘수상록’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에 담긴 몽테뉴 인생론을 영국 저술가가 20가지 문장으로 정리해서 설명한, 이를 테면 몽테뉴 입문서 같은 책이다. 지금은 ‘에세이’라고 쓰는 말과 그 글쓰기 장르 모두 몽테뉴의 이 책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도덕적인 당위보다 책 제목대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누릴 것인가에 관심 있었다는 몽테뉴의 인생론 테마 중 몇 가지가 마음에 새겨진다. 몽테뉴는 “배운 것을 될 수 있으면 잊어버려라” 그리고 “우둔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저자는 이를 ‘건망증’과 ‘느림’이라는 말로 풀이한다. 배우지 말라는 말이나 어리석게 사는 게 더 낫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적절한 위장막’이었다고 해석한다. 많이 알고 익히면서도 이런 태도가 몸에 배면 ‘사려 깊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또 ‘너무 잘 하지 말라’는 생각도 내비쳤다. 부재 중 보르도 시장에 임명돼 좀 불편한 상황에서 정치를 하게 된 몽테뉴는 되도록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정치를 지향했던가 보다. “열정적으로 관직을 수행하겠다는 약속이 허세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 그는 모든 일에 초연할 것을 신조로 삼는 스토아주의나 회의주의적 태도로 살았다고 한다. “사람은 잘난 체하고 싶거나,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 싶거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만큼 그저 바쁘게 움직이고 싶을 때 어떤 일에 끼어든다”는 그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도 비슷한 의미다. 몽테뉴는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늙은이에게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허영심과 결점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어리석고 낡은 자존심에 빠지고, 따분한 수다나 떨고, 쉽게 발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미신에 사로잡히고, 터무니없이 재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일종의 지혜이고, 그런 결점을 젊은이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칠 줄 아는 것이 나이 듦의 진정한 가치라고 몽테뉴는 여겼다.

그리고 하나 더, ‘에세’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가 특히 좋아했다는 한 문장은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라는 것이다. 몽테뉴 자신은 온건주의나 친화력, 판단 보류 등을 키워드로 처세했지만 어떻게 살든 누군가의 삶은 그 삶으로서 하나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연말 건강검진으로 알게 된 내 삶의 실상은 ‘내장비만’에 ‘식전 고혈당’이었다.

김범수 문화부장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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