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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무섭구먼” 올핸 더 숨막히는 쪽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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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무섭구먼” 올핸 더 숨막히는 쪽방촌

입력
2016.08.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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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1일 쪽방촌 주민 윤용주씨가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비좁은 방에서 홀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서울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1일 쪽방촌 주민 윤용주씨가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비좁은 방에서 홀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5㎡ 쪽방 1165세대 밀집

실내가 바깥보다 더운데

선풍기도 마음껏 못 트는

에너지빈곤층이 대다수

정부, 냉방비 지원 정책 없고

市선 부서별 지원 제각각

서울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내린 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한 쪽방촌 건물. 30여 세대가 살고 있는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니 퀴퀴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폭 1m 남짓의 1층 복도 양쪽에는 방 10개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방문 외에는 따로 창문이 없는 복도에는 공용 화장실과 정화조가 있어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환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는 건물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모여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해마다 더웠지만 올해는 유독 숨이 막힌다. 갈수록 여름이 무섭다.” 이 건물에 거주한지 5년째라는 이모(72)씨가 힘겹게 말했다.

12년째 이 건물 반지하 쪽방에 살고 있는 윤용주(54)씨는 사정이 더 심각해 보였다. 윤씨의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지만 옆 건물의 벽이 가로막아 무용지물이었다. 5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뒤 밖에 나가는 것조차 힘든 윤씨는 열기가 가득한 5㎡(약 1.5평) 방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연이은 폭염으로 건강상태가 부쩍 나빠졌다는 윤씨는 “버너 열기 때문에 음식을 해먹기가 힘들어 하루 한끼로 버티는 날이 많다”면서 “방 온도가 바깥보다 5도 정도 높아 한창 더울 때는 40도에 육박하는데 그쯤 되면 더위가 아니라 생사의 문제가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폭염과 열대야는 멀쩡한 주민들도 거리로 내몰았다.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오후 2시 동자동 쪽방촌 주변 공원에는 돗자리를 펴고 누워있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들은 무더운 날씨에 못 이겨 냉방중인 인근 건물을 찾아 들어가거나 무더위 쉼터를 찾아 더위를 피한다. 쪽방촌 주민 이기삼씨(53)는 “공동으로 전기료를 내기 때문에 전기료가 많이 나오면 세를 올려줘야 해 선풍기도 맘놓고 틀지 못한다”면서 “여름철에는 방이 있어도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쪽방촌이 밀집해 있는 용산구 동자동에는 1,165 세대가 살고 있다. 이중 절반이 65세 이상 노령층인데다 대다수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등록장애인도 158명에 이른다. 주거환경이 열악한데다 경제적 여유도 없어 더위와 온열 질환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에너지시민연대의 ‘2016년 여름철에너지빈곤층 실태파악’ 조사에 따르면 서울, 부산, 광주 등 10개 지역 빈곤층 총 210가구 중 67%가 70세 이상의 노인세대로, 냉방 방법으로는 응답자의 89%가 선풍기만 사용한다. 49%는 냉방을 적절히 하지 못해 어지러움 및 두통을 경험했고, 호흡곤란(11%), 구토(5%), 실신(1%)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해마다 폭염이 반복되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폭염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다. 현재 정부는 만 65세 이상 저소득층 노인 등에게 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빈곤층을 위한 여름 냉방비에 대한 지원은 없다. 서울시 역시 빈곤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부서별로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정도는 턱없이 낮다.

에너지시민연대 관계자는 “쪽방촌 등에 사는 소외계층은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 겨울 못지 않게 전기 사용량이 많아 냉방비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정부가 정해놓은 기초수급 기준외에 지자체가 별도의 빈곤기준선을 정해 에너지 빈곤층을 지원하고, 에너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ㆍ사진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 건물의 1층 복도 양 옆으로 쪽방 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 건물의 1층 복도 양 옆으로 쪽방 문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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