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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 "이대로 무너질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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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1) "이대로 무너질수 없어"

입력
2002.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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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 불알친구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강원도 고성 앞 바다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고향에는 가지 말았어야 했다.만류하는 집사람(제화자ㆍ諸花子ㆍ64)과 두 달을 싸운 끝에야 겨우 도착한 고향. 그러나 친구들과 바다를 보고 오히려 병이 도졌다.

고향 사람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저마다 눈물만 가득 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잘못 왔구나…. 그들의 글썽이는 눈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던 여러 바다생선이며 미역 요리를 많이 준비해줬지만 나는 입맛이 없어 전혀 입에 대지 못했다. 며칠 후 집에 돌아오니 몸은 더욱 상해있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치료에 진전이 별로 없다. 마음이 많이 약해졌다. 경기 분당 집 정원에 있던 고목 20여 그루도 밑동만 남겨두고 싹 잘라버렸다.

수년 전에 정주영(鄭周永) 회장이 선물해 심은 것인데 이상하게 지난 해 정 회장이 죽고 나서 얼마 안 가 시들어버렸다.

그래도 고목 주위에 예쁜 장미를 심으면 잘 어울리겠다 싶어 그냥 놔뒀는데 얼마 전 갑자기 보기 싫어 다 잘라냈다.

의사는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다고 강조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조금만 피곤하면 손이 파래진다.

어제 투여한 항암제 때문인지 식욕도 없다. 이렇게 약해져서는 안 되는데, 평생을 꿋꿋하게 살아온 나인데 이럴 수는 없다.

유랑극단 시절 받은 그 수많은 설움과 괄시, 비인간적 대접도 모두 극복했는데 이 정도에 무너질 수는 없다. ‘코미디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 바로 나인데 진짜 이럴 수는 없다.

‘이주일이 폐암에 걸렸다’는 보도 이후 나에게 쏟아진 애정과 관심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

하루에도 수천 통씩 걸려온 전화, “내가 살려주겠다”며 집에 찾아온 수십 명의 사람들, 시골에서 몸에 좋다는 약초를 싸 들고 찾아온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

편지와 함께 보내준 약재와 음식을 가리키며 “이 것을 꼭 먹어야 낫는다”는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얼마 전 내가 회고록을 쓴다면 첫 머리를 어떻게 쓸까 고민한 적이 있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를 첫마디로 내세울 수도 있겠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던 내 삶. 한마디로 서커스 인생이었던 무명시절,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큰 인기를 누렸던 시절, 연예인 출신이라고 외압도 많았던 국회의원 시절…. 이런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도 생각난다.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은 지방 출장 중에도 찾아오는 진짜 친구 박종환(朴鍾煥ㆍ65ㆍ여자축구연맹회장) 감독, 셋방을 면하게 해준 가수 하춘화(河春花ㆍ47)와 그의 아버지 하종오(河宗五ㆍ81)옹, 1991년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인생을 바꿔보라”며 정치 입문을 권유한 정주영 회장 등등.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도 생각나는 대로 해야겠다.

해방 직후 혈혈단신으로 고등어 배를 타고 월남한 이야기,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남(金正男)이 나를 보고 싶어 김정일에게 투정을 부렸다는 이야기 등도 두서없이 하겠다.

이 회고록을 통해 내 지나온 삶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다.

코디미언·전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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