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못 지키고 이제 와서…" 법조타운 재검토 가능성 일축
주민들 "정부 직무유기" 성토
거창 주민들이 법조타운 찬성 서명부가 날조됐다는 의혹(본보 24일자 1면 기사보기)을 제기하자 법무부 고위 관리가 도리어 문제를 제기한 주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해 빈축을 사고 있다. 법조타운 유치를 놓고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28일 거창군과 ‘학교 앞 교도소 반대 범거창군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등에 따르면 지난달 2일 거창군청에서는 법무부, 거창군, 법조타운 추진위원회, 범대위 등 관계자 10여명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올해 5월부터 서명부 날조 의혹을 일부 제기해온 범대위가 본격적으로 법조타운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자 법무부가 뒤늦게 마련한 자리였다. 그 이전에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 중앙정부 차원의 설명회가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당시 간담회 녹취록을 보면 거창군 학부모 이모(여ㆍ47)씨는 “법무부는 날조된 찬성 서명부를 제출한 거창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질문했다. 이에 법무부 교정본부 책임자 A씨는 “거창군이 4년 동안 주민들을 속인 ‘거창한 죄목’이 생기기 전에 군을 지켰어야 할 의무는 주민에게 있었다”며 “그 의무를 4년 전에는 안 하고, 이제 와 한다고 해서 이미 진행된 법적 절차를 뒤집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씨가 “그때는 주민들이 서명부가 날조됐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반박하자 A씨는 “만약 서명부 상당 부분이 3만명을 뒤집을 만큼 가짜라는 확신과 증거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고소하라”면서 “그것이 아니라면 절차는 진행돼야 하고, 허위성 고소를 할 경우에는 거창군과 반대측이 원고, 피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또 “서명부에 대해 가짜라는 의심이 있었다면 그때 군수에게 강력히 (의견을 전달)해서 유치건의서를 못 올리게 했어야 했다”며 “지자체에서 찬반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전제로 법적 절차를 진행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본보는 A씨에게 발언의 진위를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법무부와 거창군은 간담회 이후 현재에도 “왜곡된 민의(찬성 서명부 날조)로 법조타운 유치가 확정되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주민들의 지적에 대해 ‘모르쇠’ 태도로 일관하며 사업을 밀어붙일 태세다. 이홍기 군수는 김은옥 범대위 대표가 “법조타운이 교도소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사람이 태반이다. 재논의를 해 달라”고 요구하자 “설명을 안 들었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해선 안 된다”고 일축했다. 이 군수는 “경찰 수사 결과 날조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서명부가 법적 구속 요건은 아니었던 만큼 사업 추진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법무부와 군이 여론수렴 과정의 결정적 흠결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이를 치유하기는커녕 사업 강행 의지만 밝힘에 따라 지역 여론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거창읍 중앙리 주민 이모(여ㆍ46)씨는 “법무부가 군이 제출한 서명부를 한 번 훑기만 해도 날조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이를 받아들인 것은 직무유기”라며 “정부도 지자체도 주민을 속이기에 급급하다”고 성토했다.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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