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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시대 노동의 얼굴

입력
2014.1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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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막말과 모욕 행위에 항의하며 분신했던 경비원이 결국 사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대구와 부산에서도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들을 모욕하고 괴롭힌 입주민이 입건됐다. 모두 자신들의 안전과 편의를 책임지고 있는 경비원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일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보호하고 지원해 자신들의 생활안녕을 더욱 공고히 하도록 해야 하는데 괴롭히고 못살게 굴어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

아울러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여성 근로자가 회사로부터 계약만료를 통보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비정규직의 설움을 토로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어른들을 원망하는 장문의 유서를 남겼다. 이번 사건 말고도 고용불안, 모욕행위, 차별대우 등을 이유로 근로자가 목숨을 끊은 사례는 적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들 머릿속에 내재한 반노동주의와 계약적 질서의 부재 때문이다. 근로자의 조상이었던 전통시대 장인들이 모두 천민이었던 점은 제쳐두고라도, 식민지와 한국전쟁, 근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머리는 공장의 삶과 노동의 이데올로기를 혐오하도록 세탁됐다. 노동은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대상이 됐다. 빠른 경제 성장에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 주역으로 노동의 현장에서 청춘을 보낸 근로자들에게는 멸시와 조롱 이외에 어떤 존경도 제공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대학 진학률, 남아도는 중소기업 일자리와 구직자들의 대기업 집중, 아파트 경비원을 향한 멸시 등의 이면에 이런 반노동주의가 내재한다.

다음 이유는 노동의 극단적 상품화다. 복지국가의 기획을 노동력의 탈상품화로 규정한다면, 우리나라의 노동력 상품화 수준은 정도가 매우 심하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대표적 복지후진국이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 중 사회임금(교육, 의료, 주택 등 사회적으로 공급되는 재화)의 비중은 2012년 기준으로 가처분소득의 12.9%에 불과하다(OECD 평균 40.7%). 우리나라 근로자들에게는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 얻는 수입 이외에 다른 대체소득원이 부재하다. 따라서 취업 여부는 개인의 후생복지를 결정하는 관건이며 임금은 생계와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나 아파트입주자 등 노동력 수요자가 갖는 교섭력이 압도적이다. 연차의 누적을 피하기 위해 근로기간을 쪼개서 계약해도, 업무수행 과정에서 멸시와 수모가 반복돼도 근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마지막은 노동시장의 다층화 문제다. 이론적으로 보면 기업간 생산과 서비스의 유기적 연계인 하청제도는 공존과 착취라는 두 가지 면모를 갖는다. 하청기업은 모기업의 생산과 판매에 전적으로 의존해 비용을 절감하고 공급을 지속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제부침에 따르는 모기업의 위험부담을 완전히 넘겨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으며 그 위험의 대부분은 하청 근로자에게 전가된다. 우리 노동시장은 다단계로 중층화돼 있으며 위험은 위에서 아래로 전가된다. 아파트입주자 대표회의가 관리소장을 임명하면 관리소장은 입주자 대표와 협의를 거쳐 경비, 전기, 설비 및 청소 등을 담당할 용역회사를 선정한다. 때로는 경비회사가 청소와 기타 관리 등을 재하청 한다. 그 과정은 흡사 생산물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과정을 닮았는데 유통 단계가 추가될수록 공급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어진다. 피라미드의 저점에서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임금과 근로의 악조건이 제공되며, 그들에게 제공될 몫의 상당분이 중간사업자들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이런 중층적 비용이전의 다단계 노동시장 구조로는 당면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우리 삶의 영역에서 상품화 되지 말아야 할 세 가지를 언급했다. 화폐, 토지, 인간의 노동인데,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이 모두가 상품화 됐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어도 거래의 규율이 없다면 지속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마이클 센델은 그의 정의론에서 “어려운 시기에 이웃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활개치는 사회”를 나쁜 공동체로 정의하며, “지나친 탐욕은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하는 악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곱씹어 볼 말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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