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비공개 요청" 뒤늦게 실토
15일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이 비공개로 열린 것은 북측이 아닌 우리측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정부가 17일 뒤늦게 실토했다. 더구나 회담을 비공개로 시작했다가 오후 들어 북측에 공개를 요청하며 우왕좌왕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북대화의 투명성을 강조해 온 박근혜 대통령이 비공개 회담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북한이 반발할 빌미를 남겼고, 회담 후 정부의 설명도 오락가락하면서 스스로 신뢰를 까먹은 꼴이 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15일 회담 이전에 남북이 주고 받은 전화통지문은 총 9차례다. 7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교전이 벌어지자 북한이 먼저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긴급 단독 접촉’을 제의했다.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대표로 나서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답신을 통해 회담 자체에는 동의했지만 우리측 대표로 김 실장이 나설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은 8일에도 전통문을 보냈지만 우리측의 답신은 없었다. 이에 북한은 10일 재차 답변을 촉구했고, 우리측은 불과 1시간 만에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을 대표로 내보내겠다는 전통문을 보냈다.
정부가 비공개 회담을 제안한 것은 바로 10일 전통문이었다. 이전까지 남북간에 비공개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이에 북측은 같은 날 비공개에 동의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이후 13일 우리측이 대표단 명단을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북측은 14일 김영철을 비롯한 대표단 명단을 회신했고, 우리도 다시 전통문을 보내 대표단 면면을 알렸다. 우리 대표단은 15일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비공개라는 점을 북측에 재차 강조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정부는 회담 당일이나 뒷날 이런 준비과정을 흐리멍덩하게 설명해 혼선을 자초했다. 15일 회담 직후 국방부 당국자는 “7일 북측이 긴급 접촉을 제의해 회담이 열렸고 남북이 서로 비공개에 합의했다”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이후의 자초지종을 생략하면서 북한이 7일 비공개 접촉을 제의해 15일 회담이 열렸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통일부는 한술 더 떴다. 한 당국자는 16일 북한이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 실장간 단독 접촉을 제의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자 “북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비공개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북측이 비공개를 제안했다는 뉘앙스였다. 결국 북한이 16일 밤 ‘공개보도’를 통해 일방적으로 회담 전말을 공개하면서 우리 정부가 궁지에 몰렸고, 정부는 또 다시 입장자료를 통해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정부는 17일 “2차 고위급 접촉을 앞둔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군사회담은 천안함ㆍ연평도 사건 사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획정, 대북전단 살포 등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만큼 고위급 접촉을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비공개로 추진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15일 오전 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우리 대표단은 오후 들어 회담을 공개로 전환하자고 북측에 요청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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